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일반세미나 일반세미나

[이반 일리치 s3] 그림자 노동 1/2

게시물 정보

작성자 김다솜 작성일19-07-26 16:49 조회74회 댓글0건

본문

  이번 주 일리치 세미나에서는 그림자 노동1,2장을 읽었습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서 일리치는 발전이라는 환상을 이야기하면서 외부 비용과 역생산성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요. 먼저 외부 비용이란, 소비자가 상품 혹은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해 치른 비용 바깥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의미합니다. 산업폐기물 처리 비용과 같은 것이 그 예시이고, 소비자 본인 세대가 되었든 후대가 되었든 언젠가는 꼭 지불해야하는 비용입니다. 보통 이러한 외부비용의 증가 때문에 발전이 도리어 역효과를 낸다고 생각하지만, 일리치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역생산성입니다. 역생산성이란 상품을 구매해서 사용하는 수혜자 내부에서 발생하는 좌절감인데요. 가령 의료 발전에 의해 과도한 의료 수요를 발생시킴으로써 건강’, 즉 환자의 유기적 대처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 이동 수단의 개발과 그것의 보편적 사용이 도리어 출퇴근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그로인해 시간을 허비하는 것 등이 역생산성의 예시가 됩니다.


  “강요된 소비가 초래한 이런 제도화된 좌절감이 새로운 외부비용까지 낳고 있는 마당에, 생산 능력의 구비 여하에 따라 바람직한 사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발전이라는 척도 만으로는 그 사회가 바람직한지 판단할 수 없다고 일리치는 말합니다. 일리치는 인간의 만족을 소유로 볼 것인지, ‘존재(행위)’로 볼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만족이 소유에 있다고 여기는 사회가 상품집약적 사회입니다. 인간의 필요가 상품과 서비스를 통해서만 충족되게끔 전문가들에 의해 구조화된 사회입니다. 그 속에서의 인간은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입니다.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생산 노동을 하고, 생산 노동의 보완물로써 그림자 노동이라는 무급 노동을 합니다. 그림자 노동이란 생산 노동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일 자체가 생산노동은 또 아니기에 비생산적이고 부차적이라고 여겨지는 노동입니다. 지난 시간 읽었던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에 나왔던 내용으로 예시를 들자면, ‘세탁기의 등장으로 인해 빨래터 까지 나가서 빨래를 일일이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지만, 각자의 집에서 욕실과 세탁기를 청소해야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 것이 그림자 노동의 예시입니다.


  반면 인간의 만족이 행위에 있다고 여기는 사회는 공동체 저마다가 고유의 생활양식을 갖고서 자급자족하는 사회입니다. 그 속에서의 인간은 호모 아르티펙스, 서브시스텐스(homo artifex, subsistens)입니다. 제 책은 자급자족적 삶의 기술을 갖춘 인간으로 번역되어있긴 한데, 아르티펙스라는 말 자체가 숙련된도 있지만, 다른 번역본에서는 예술가로 번역되었었습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자신의 필요(그 필요 역시 전문가들의 제시에 의한 것)소비의 방식을 거쳐서만 충족시키는 것이었던 반면 호모 아르티펙스는 자신들이 직접 검토하면서 인간과 도구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며 생활 양식을 창안해냅니다.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주입된 것이 아닌 공동체 스스로 창안해낸 것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삶의 양식에서 비롯되는 노동을 이반 일리치는 토박이(=고유한) 노동이라고 말합니다.


  2장에서는 최초로 모어(母語)’를 정리하고 문법서를 출판해냈던 15세기 스페인 학자 네브리하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 이전까지는 모어라는 개념도 없었고, 언어란 개인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평생에 걸쳐 터득해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이전 사람들에게있어 언어란 일상어’, ‘토박이말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표준화된 언어를 배워야한다는 것도 없었고요. 이러한 모어교육은 지금의 보통교육의 요소를 최초로 고안해냈던 사건입니다.


  일리치는, 이처럼 토박이말을 버리고 모어로 전환한 사건이야 말로 상품집약적 사회의 도래를 예고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토박이 말->모국어의 전환은 곧, “모유->분유, 자급자족->복지, 사용가치를 위한 생산->시장가치를 위한 생산을 예고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존의 교회가 해왔던 어머니’, ‘돌봄의 역할이 국가의 역할로 전환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인간 각각의 필요와 삶의 양식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창안해내는 것이 아닌, 구체적 공동체의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국가/시장경제가 만들어낸 필요, 삶의 양식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세미나 때도 이야기 나눴지만, 이반 일리치는 과거를 이상적 사회로 놓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책에서도 나왔듯, 현대적인 기술적 도구들을 자급자족적 가치들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적절히 사용하는 방식도 긍정하고 있구요.


  책 중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상품집약적 사회에서 문화는 전문 서비스의 멸균병동이 되고, 인간은 각종 서비스들을 전전하며 평생 젖먹이가 된다고요. 인간이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될 때 가장 무서운 지점은, 자신의 삶이 검토되지 않은 삶이 되어버린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이 상품과 서비스들이 나에게 정말 사용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검토 없이 그것에 의존하고, 그것들을 구매하기 위해 끊임 없이 생산노동과 그림자노동에 시달리고... 읽으면서 평생 젖먹이라는 표현에 정말 절감했는데, 평생 젖먹이의 삶에는 충만함이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내 일상을 '호모 아르티펙스'로서 산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번거롭고 고단할거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 필요를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으로 해결해버리기 전에 그것을 검토해보는 삶. 고단하지만 그곳에 충만함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