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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유기행 S4] 8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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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삼봉 작성일19-06-27 20:44 조회1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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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유기 세미나의 김지혜입니다

<고르기아스>의 두 번째 세미나였던, 623일 서유기 세미나 후기를 전해드립니다~


바로 직전에 읽었던 <알키비아데스>는 위작논쟁이 있는 작품이었던지라 뭔가~ 소크라테스의 대화(논증)의 맛이 부족하다고 느꼈었는데요~ 역시 진품(?)은 다릅니다. 고르기아스에서의 소크라테스의 특유의 대화의 기운을 마음껏 느끼고 있습니다. 흐흐 길어서 세 번에 나눠서 읽고 있는데요, 큰 주제는 철학과 연설술이 어떻게 연결되어야하는가, 다시 말해서 철학적 삶(도덕적 삶)이 어떻게 실천(정치)으로 연결될 것인가를 말해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론까지 다 읽고나서야 큰 주제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결론까지 과정은 (언제나 그랬듯) 이리로 저리로 왔다갔다 합니다. 그 중에서도 저에게 깊이 있게 다가온 세 부분을 아래에 적어보았습니다.


 

쓸모 있는 연설술?

폴로스는 연설술을 통하면 큰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게 불의라고 할지라도 자신은 큰 힘을 행사하며 살고 싶다고도 말하죠.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불의를 저지르느니 불의를 당하겠다고 합니다. ? 불의를 당하겠다고요?

철학적인 삶을 사는 사람으로써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소크라테스에게 절대 안 될 말씀입니다. 그리고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가능하게하고, 불의를 저질러도 괜찮게 만드는 연설술은 철학과는 거리가 먼 것이 되고 말지요. 만약에 쓸모 있는 연설술이 있다면 자신이 불의를 저질렀을 때 그 대가를 치룰 수 있도록 돕는 경우만 있을 뿐입니다.

 

불의를 저지르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고발하고, 그 다음에는 가족이든 다른 어떤 친구든 언제라도 고발하여 그 부정의한 행위를 감추지 말고 백일하에 드러내, 그가 대가를 치르고 건강해지도록 해야 하며, ... 눈을 질끈 감고 선선히 그리고 용감하게 자신을 내맡기도록 강제해야 하네. ... 벌금을 물어야 할 만한 일이라면 물고, 추방당할 만한 일이라면 추방당하고, 사형당할 만한 일이라면 사형당해야 하네. - 고르기아스, 480cd

 

이 부분에 대해서 토론을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정말이지 철학적인 신념이 확고하지 않고서야 그렇게 사는 것은 힘들어 보이니까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의 첫 번째 고발자가 되기를 자처해야 합니다. 그 부정의한 행위들을 백일하에 드러내서 그 큰 악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사용하는 연설술만이 바르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합니다.

그리고 불의를 저지르고 불의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악이라고도 말하죠. 만약에 자신에게 적이 있다면 적이 불의를 저지르고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도록 두거나 돕는 것이 적을 대하는 방식이라고도 말합니다. 허허, 친구가 잘못된 일을 하는데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건 친구를 적으로 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니체 그리고 칼리클레스

이름부터 치기어린 캐릭터였던, 폴로스(망아지)가 소크라테스에게 밀리고 있을 때 칼리클레스가 등장합니다. 이 캐릭터 만만치 않습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이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자연의 정의와 법의 정의를 섞어서 묻고 답하는 대화로 상대가 모순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고 꼬집는데요, 그러면서 새로운 개념들이 등장합니다.

약육강식과 같은 자연의 정의를 따를 수 있는 강자들, 강자들을 제어하기 위해서 약자들이 만든 법의 정의! 이런 표현들이 왠지 익숙한데요, 아니나 다를까 권력()의 의지를 주창했던 니체가 칼리클레스에게 감동을 했었다고 주석에 나와 있더군요.

칼리클레스는 자연의 정의와 법의 정의를 대비시켜서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용기 있게 자신의 욕망을 최대치로 만족시키면서 사는 강자의 정의, 자연의 정의는 법의 입장에서 보면 불의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강자처럼 할 용기가 없는 약자들의 논리일 뿐입니다. 열등한 자들이 자신의 열등함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몫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러면서 철학은 청소년 때나 하는 거라면서 더 큰 일, 세상물정을 읽는 기예를 닦아야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철학을 하다가 경험해야할 것을 못해서 열등해지고 말까봐 쑥덕공론만 계속하게 될 거라면서요. 칼리클레스는 민중을 열등하고 비열한 약자들로 싸잡아서 폄하합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칼리클레스와 같은 이들이 필요 이상으로 지혜로워져서 자신도 모르게 못쓰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서로 권하고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강자에 대해서 정확히 밝혀달라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듣기에 용기 있게 욕망껏 사는 강자의 방식이 결코 자신을 잘 다스리는 식으로는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칼리클레스는 이에 대해서 절제는 약자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답하지요. 이제 전형적인 소크라테스식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배고픔을 괴로움인가 아닌가? 배고픔을 없애려 음식을 먹으면 기쁜가 아닌가? 괴로움은 나쁜 것이고 기쁨은 좋은 건가 아닌가? 배고픔과 배고픔을 없애는 즐거움은 동시에 있는 것인가 아닌가? 그렇다면 기쁨과 고통, 좋은 것과 나쁜 것은 함께 있는가 아닌가? 이런 식의 대화를 이어가다보니 결국 훌륭한 사람은 멋대로 욕망껏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주의를 기울인다는 결론이 납니다. 칼리클레스도 소크라테스에게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크라테스의 말빨이 어쩐지 더 세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이 부분에서 성아샘은 새삼 지난 시즌에 읽었던 I. F. 스톤(이름이 순간 기억이 나지 않아 다 같이 침묵했지요)이 말하기를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 산파술이 아니라 낙태술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몸과 혼

그리고 마지막으로 몸 그리고 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도덕적인 삶은 곧 몸과 혼 특히 혼을 바르게 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또는 스스로 윤리를 정해서 그것대로 사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몸과 혼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몸을 다스리는 것과 혼을 다스리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 나눈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혼을 다스리는 것은 사법술과 같다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토론에서 분별심과는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근거가 있고 없고를 따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세밀하게 이성적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보는 과정을 통해서 얻으려는 것은 윤리이니까요.

몸과 혼을 다스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문득 소담샘이 뜻(?)을 세워도 쉽게 흔들거리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토론을 나누면서 그게 다 제대로세워놓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애초에 부끄러움이나 불의를 당하는 것에 대해서 요즘 사람들은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그게 약자적인 태도 때문일 수도 있고 자의식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차이기 전에 먼저 찬다!라는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요.

 

다음 시간에 이 몸과 혼의 부분을 이어서 읽고 결론까지 해서 <고르기아스>를 마무리할 것 같아요. 어떻게 이야기가 끝날지 칼리클레스와 폴로스는 결국 소크라테스의 열렬한 팬이 될지 또는 계속 그에게 반목할지 궁금합니다. 흥미진진한 캐릭터들과 소크라테스만의 대화법을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주가 되겠네요. 다음주에는 들뢰즈가 만난 철학사를 읽을 예정이고 다음 시즌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날 것 같습니다! , 그럼 이제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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