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일반세미나 일반세미나

[푸렌즈 세미나] S2 9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서기 작성일19-06-21 23:03 조회293회 댓글0건

본문

푸렌즈의 이번주 후기를 맡은 경석입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어느덧 푸렌즈 S29번째 시간을 가졌습니다. 10회의 푸렌즈 세미나 중 전반부 5회는 푸코의 말과 사물세미나였고, 후반부 5회는 말과 사물에서 르네상스 세계의 음화로 언급했던 돈끼호떼를 읽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은 푸코의 말과 사물중 돈끼호떼를 언급하는 부분 6페이지 정도를 같이 강독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다시 봐도 아리송한 말과 사물인지라 제 이해대로 적는 내용이 실제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과 상이할 수도 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돈끼호떼 하면 풍차를 거인이라 착각하며 달려드는 광인의 모습이 우선 떠오릅니다. 다소 과장이 섞여있지만, 말과 사물에서는 이런 돈끼호떼의 광기를 르네상스 시대를 특징 짓는 유사성을 극대화한 예시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말과 사물의 2장인 세계의 산문은 닮음과 유사성으로 지식을 구축했던 르네상스 시대를 다룹니다. 이 시대에 언어와 기호는 사물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었고, 더 나아가 언어와 기호 자체도 해독해야 할 사물로서 제시됩니다. 언어 또한 자체의 본질을 가진 실체이자 신이 내려준 사물이고, 이 해독되어야 할 불투명한 언어는 다른 사물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유사성으로 얽힙니다.

이어 3장은 재현하기라는 타이틀 아래, 기호가 재현의 수단으로 변질된 고전 시대를 다룹니다. 이 시대의 기호와 언어는 사물을 지칭하는 투명한 지시어에 머물게 되고 이런 지시는 자의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즉 언어는 이제 사물들 뒤로 물러나 재현을 위한 작용만 할 뿐이죠.

말과 사물에서 돈끼호떼에 대한 언급은 3장의 맨 앞에 위치하여, 2세계의 산문에서 3재현하기의 시대로 넘어가는 길목에 놓입니다. 돈끼호떼는 여전히 르네상스적 유사성의 시대에 머물러 풍차와 객주집, 가축들을 거인과 성, 군대로 간주하며 행동합니다. 돈끼호떼는 주위 사람들에게 광인으로 비칠 뿐이고 웃음거리 내지는 흥미로운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푸코가 쓰듯이, 이제는 사물과 연계되지 않고 언어 그 자체의 논리로 존재하는 텅빈 지시어들을 현실로 채우기 위해 돈끼호떼는 우스꽝스럽고 무모해보이는 유사성의 모험을 계속 해 나갑니다.

이런 돈끼호떼의 광란의 모험은 책으로 묶어져 나오기까지 하는데, 1권은 이후의 모험에 나선 돈끼호떼나 이를 보는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의 기준이 되거나 재현 기호로 작용하게 됩니다. 1권의 돈끼호떼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기사도 소설에 맞추려 했다면, 이제 2권에서 돈끼호떼는 아예 기사도 소설(1) 자체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1권을 읽은 사람들(2권의 등장인물들)에게 돈끼호떼가 보이는 행동은 그 1권의 내용을 반복 재생하는 재현 기호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 돈끼호떼의 행동이나 돈끼호떼 존재 자체는 이제 단순한 미치광이를 넘어, 기사도 소설의 클리쉐이적인 요소를 재현하는 기호로 자리잡습니다. 실제로 저자 세르반테스는 돈끼호떼 1권을 1605년에 출판한 뒤 10년 뒤인 1615년에 2권을 출판했는데, 2권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돈끼호떼의 모험을 담은 1권을 읽었고 돈끼호떼를 알아볼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대해 돈끼호떼와 토론(?)까지 한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유사성의 시대에서 재현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언어는 신이 내려준, 해독해야 할 또 하나의 사물이라는 고유한 위치와 힘을 잃습니다. 하지만 푸코는 이 시대의 언어는 대신 재현력이라는 새로운 힘을 지니게 되었다고 씁니다. 2권의 돈끼호떼는 주위 사람들에게 1권의 인물로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면서, ‘돈끼호떼는 오직 언어에만 빚지고 전적으로 말에만 내재하는 실재성을 얻’(88p)게 됩니다. 돈끼호떼는 언어적 표지들이 서로 엮이면서 생겨나게 하는 그 얇고 일정한 관계속에 놓이는데, 그의 존재 근거는 언어의 재현력에서 비롯됩니다.

 

말과 사물의 돈끼호떼 관련 내용 중 광인과 시인에 대한 부분(89p)에 대해서도 얘기가 있었습니다. 최초의 근대소설인 돈끼호떼에서는 이전 시대의 기호와 유사성은 끊임없이 무시되고 유사성과 기호의 매듭이 풀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런 배경에서 두 인물, 즉 시인과 광인이 마주 보고 출현한다고 합니다. 둘 다 유사성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지만, 광인은 유비 속에서 이성을 잃은 자이자 도처에서 닮음과 닮음의 기호만을 보는 자입니다. 반면 시인은 명명되고 언제나 미리 규정된 차이 아래 파묻힌 사물들의 친근성, 흩어져 있는 사물들의 유사성을 다시 찾아내는 사람이자 말이 사물의 보편적 닮음 속에서 반짝이던 시대를 상기시키는 사람입니다.

실제 시인들이 적는 아름다운 메타포는 자신이 그 메타포를 (광인처럼?) 직접적으로 느껴서 옮겨 적은 것이라고 합니다. 시인들에게 비유는 그냥 본인의 생생한 유사성의 느낌을 바로 적어내린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단순한 시적 감수성이나 문학적 기술의 차원이 아니며, 시인은 유사성의 차원에서 세계를 인지하는 능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푸코도 그런 점에 주목해서 시인과 광인을 나란히 언급합니다.

 

2권에서 산쵸가 속담을 인용한답시고 잘못된 문구를 써서 돈끼호떼와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이 반복되어 나오는데 이 둘 간의 대화가 어떻게든 통하고 이어진다는 면에서, 단순한 재현 기호이자 지칭 도구로서의 언어적 성격을 확연히 드러내 보여준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다음 주는 돈끼호떼 마지막 시간으로, 도합 1500페이지에 달하는 돈끼호떼 1,2권을 모두 끝내는 시간입니다. 이로써 푸렌즈 S2도 종점에 다가갑니다. 마지막 시간도 즐겁게 마치고, 다음 시즌은 좀더 말과 사물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시간이 되길 바라봅니다. ㅎㅎ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