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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유기행 s4] 6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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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아 작성일19-06-11 11:12 조회2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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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유기 세미나 이번 후기를 맡은 성아입니다. 이번주 저희는 알키비아데스 2편을 읽고 만났습니다. 신전에 기도를 드리러 가는 알키비아데스를 막아서며, 소크라테스는 기도를 드릴 때도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는 오이디푸스의 예를 들면서, 나는 무언가가 내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빌었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나쁜 것이었을 가능성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러니 분별을 갖추지 않은 기도는 오히려 해로운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왕이신 제우스여, 좋은 것들은

빌든 빌지 않든 우리에게 주십시오.

끔찍한 것들은 빌더라도 막아 주십시오.


알키비아데스 143a에 나와 있는 시입니다. 어떤가요? 글자만 놓고 보면 약간은 얍삽해 보이지 않나요? (ㅋㅋ) 램프의 요정 지니에게 세 가지 소원을 빌 때 백 가지 소원을 들어주세요.” 라고 비는 것이랑 비슷한 격 아니냐, 싶을 정도로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천봉쇄해버리는 기도문입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 시인이야말로 분별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하는데요, 자신이 좋은 것들을 빌지 않을 가능성이, 심지어는 끔찍한 것들을 빌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 시인은 적어도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제우스에게 자신이 좋은 결정을 하게끔 인도해달라고 빌고 있으니 무턱대고 기도부터 하는 사람들보다는 분별을 갖추는 데 훨씬 앞서 있는 것 같습니다.

분별을 갖추지 않은 기도는 고대 아테나 인들에게만 있는 나쁜 버릇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저희 역시 무언가를 욕망할 때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경험이 모두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화장을 하고, 빡센 옷을 입고 클럽에 놀러 갈 때면 당장 예쁘다는 칭찬을 듣고 공짜 술을 마시게 됩니다. 그러나 그럴 때 얻는 쾌감과 우쭐함에는 반드시 타인의 폭력적인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대가도 따릅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반드시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바랄 때 그것의 좋은 부분만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욕망할 때 그것의 정체를 눈 똑바로 뜨고 봐야 합니다. 그래야만 닥쳐온 결과 앞에서 당황스러워 하고, 남 탓을 하기보다 주체적으로 자기 욕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소크라테스는 분별이 필요하다, 에서 나아가 분별심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합니다. 아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분별심이 있게 될까요? 소크라테스는, 또 플라톤은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항해술, 레슬링 등 많은 것에 통달해도 가장 좋은 앎이 없다면 분별심이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서 전체의 이로움을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기술을 써먹는 것이 더 중한 전문가들을 비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이 대목에서 저희의 앎에 대해서도 한 번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 좋은 앎 없이 어떤 분야에만 통달한다면 저희의 삶은 기술을 쓰는 것으로만 일축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는 딱히 이롭지 않은, 어쩌면 해로울 수도 있는 앎도 있는가 하면 좋은 무지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책에서는, 특정한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그 상대의 집을 찾아갔을 때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를 분간하지 못한다면 살인을 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예시가 나옵니다. 저희로서 이 예시는 약간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상대를 꼭 죽이고 싶었던 거면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일 수도 있잖아!) 그래도 책 후반에 물질적 번영을 일굼으로써 오히려 해로운 욕망을 마구마구 좇을 수 있게 된 아테나인들과, 소박하고 정결하게 살아가는 라케다이몬(스파르타) 사람들을 비교할 때는,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좋은 무지의 뜻이 무엇인지 와닿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무지라는 것은 임시방편적인 해결책이고, 외부적인 조건을 치우는 것 밖에는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도 <좋은 무지도 있다> 광기, 무분별 등과 구분되는 무지의 특성을 더욱 세세하게 정립하는 논증이기는 하지만, 실천적인 윤리로 넘어가기엔 조금 부족한 문구인 것 같습니다. (저는 책 앞 부분을 읽으면서 <욕망에 대한 철저한 앎이 우리를 주인으로서, 윤리적으로 살게 한다>고 생각을 정리했기 때문에 더욱 매끄럽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의 요는 좋은 무지를 갖추는 것이라기 보다는 가장 좋은 앎을 갖추는 것이었다는 것을 재삼 상기시키니 그 혼란에서 약간은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앗.. 그런데 가장 좋은 앎은 또 뭘까요?)

다음 주 서유기는 『고르기아스』를 읽고 모입니다. 서유기 세미나 시즌 4,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후반기에 접어들었네요…! 늘 그랬던 것처럼 다음 주 세미나에서도 소크라테스에 대해, 플라톤에 대해 활발발하게 이야기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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