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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은 니체 시즌 2, 4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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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겸 작성일19-06-09 22:54 조회23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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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겸입니다.

 이 번 세미나는 도덕의 계보학 제3논문, ‘금욕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였습니다. 우리를 햇갈리게 하는 내용들이 특히 많았는데요. 정오로 판정하는 방식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먼저 니체는 예술가에게 금욕적 이상은 아무 것도 아니거나 많은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예술가가 가지는 예술에 가지는 정열은 고고한 듯 보이지만 독립적이지 못하고 철학, 도덕, 종교의 시종에 불과 합니다. 철학이나 종교의 권위를 빌리지 않고 홀로서지는 못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의 작품은 그 자신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그가 가지지 않는 것들의 표현입니다. 괴테는 파우스트와 같은 인물의 특성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예술로 현실화 하려고 했습니다

  다음은 철학자들의 금욕적 이상입니다. 칸트는 아름다움은 결코 체험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구경꾼의 미학입니다. 오히려 감정의 개입이 없는 상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미라는 것이죠. 자신은 상황에서 빠져서 무심하게 바라볼 때 느끼는 아름다움이 미라는 것입니다. 쇼펜하우어는 미를 활용하면 의지나 성욕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쇼펜하우어가 진짜 삶의 의지가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니체의 견해입니다. 쇼펜하우어도 적을 만들어 화도내고 욕도하면서 살아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요. 철학자들도 최고로 힘있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셈입니다. 다만 그 길이 세상에 바로 육박해 들어가는 길과는 다른 길입니다. 부자유를 부정하면서 황야로 떠나며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냅니다. 자신의 생존을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긍정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니체는 이렇게 패러디 합니다. ‘세계가 망하더라도 철학은 살고, 철학자도 살고, 나도 살아남을리라!’

  금욕적 이상의 덕은 자기보존의지의 높은 생산성입니다. 현장에서 확인하는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사막의 생산성입니다. 침범 받지 않는 폐쇄된 공간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하여 얻는 생산성입니다. 그는 현실로 침투해 들어가지도 못하고 침입을 받는 것도 싫어합니다. 그는 소유당하지 않기 위해 소유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에 고통도 받지 않고 그 고통을 남의 몫으로 돌립니다. 그리고 진리를 안다고 떠들어대면 듣기 싫어합니다.

  금욕적 이상을 실현하는 자들은 권력의 의지가 강력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금욕이나 고행을 함으로써 두려움을 가지게 합니다. 금욕을 통하여 자신을 세상과 분리해 내고 두려움을 활용하여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금욕적 삶이란 하나의 자기모순입니다. 원한으로 작동하는 삶입니다, 삶의 밑바닥에 있는 조건들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탐욕스런 본능과 힘에 대한 의지의 원한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힘의 원천을 폐쇄하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삶이 즐겁거나 아름다우면 눈총을 주고 희생이나 고통, 재난, 자기희생은 찬양하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형미샘이 니체는 금욕적 이상을 체험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니체는 회고록에 신은 이미 니게 많은 고통을 주셨지만 나는 모든 일을 그토록 훌륭히 수행하시는 신의 위대한 힘을 진심으로 인정한다. 나는 신에게 봉사하는 데 영원히 나 자신을 바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라고 기록합니다. 그가 사제가 되지 않았지만 사제의 금욕적 이상은 충분히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3논문도 그가 자신을 극복하는 과정의 기록이었을 것입니다.

  니체는 병자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 눈길은 이렇게 탄식한다. ‘내가 어떤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그럴 희망이 없다. 나는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난단 말인가?’ 그렇데 난 나 자신에 진저리가 나구나!‘ ... 자기 경멸이라는 토양 위에서 늪지대라 할 수 있는 곳에서 온갖 잡초며 온갖 독초가 꽁꽁 숭어서 아주 조그마하게, 너무나 비열하고 너무나 불쾌하게 자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복수심과 유감이라는 벌레가 우글거리고 있다. 저는 이 글에서 이생망이라는 유행어가 떠올랐습니다. 이 생은 가망없다고 태어난 조건을 원망하고 푸념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니체는 자기 삶의 현장을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으면서 다른 자기로 만들어가는 기예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제3 논문은 제가 힘을 쓰는 법이 많이 담겨 있어서 찔리기도 했지만 다르게 힘 쓸 수 있는 지혜를 배운 장이기도 합니다. 다음 주도 니체에게 한 수를 배워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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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연님의 댓글

보연 작성일

저는 예전에는 대게 심각하게 읽었는데 이번에는 셀프 쾌락법의 온갖 기술이 담겨있는 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ㅎㅎ 여전히 어려운 장이긴한데 온갖 방법을 동원해 밖에서는 절대 겪지 않고, 안에서만 겪으려는 다양한 기술이 집대성된 장?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주에는 도덕의 계보 마지막이네요. 마지막까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