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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천왕 s2] 4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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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석현 작성일19-05-11 17:34 조회1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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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네 번째 후기를 맡은 석현입니다

이번 간식을 같이 준비한 3분의 선생님들과 20분정도 세미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두분은 2부의 <대인을 위하여>부분이 인상깊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차라투스트라의 의지가 인간을 

벗어나 초인으로 넘어가는게 아니라고 하는 부분이 신기했습니다. 초인이 되는 것 또한 이분법의 한쪽편에 

서는 것이며 초인이 아닌것을 폄하하게 될것이기 때문이라 이해했습니다. 각 선생님들 마다 책이 달라서

<세상살이를 위한 책략에 대하여>, <현명한 처세술에 대하여>라는 번역도 있었습니다. 여러 번역서를 읽는

것도 새로운 해석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다같이 받았습니다. 이 부분은 제일 마지막에 낭송했습니다.


저와 다른 한분은 <예언자>부분을 골랐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너무 어려워서 세미나하며 다른 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 골랐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를 세미나를 여는 낭송으로 했습니다. 


<예언자>부분에 대한 답변들을 요약해봤습니다.

1. 니힐리즘, 그저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죽었지만 방향성을 잃은 우리를 말하는 게 아닌가?

 1장 <세 변화에 대하여>에서 낙타, 사자, 아이를 말했는데 <예언자>부분에서 아직도 사자에서 아이로 가지   못한 것을 의미 한것 같다. 스피노자의 '이종인식'에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3부에서 아이로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2. 그렇다면 1장, 2장, 3장은 같은 흐름에서 봐야하는 것인가? 계연성이 없었는데 나중에 수정한 것이 아닌   가? 1장, 2장, 3장은 같은 흐름이 맞고 4부는 따로라는 학계의 이야기가 있다.

3. 그리스신화, 바그너, 소펜하우어가 영향을 준것 같다.

4.이사람을 보라』에서 "내가 신격화 될까봐 두렵다."를 뜻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5. 제자가 차라투스트라의 꿈해몽을 할때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생각났다.


<구제에 대하여>부분에서 저는 영화 <RAIN MAN>이 생각났습니다.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동생과 죽은 아버지의 유산 모두를 자기 몫으로 얻어내려하는 형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영화가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동생이 당연히 장애인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형이 더 장애인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 영화였습니다. 

<구제에 대하여>에서도 불구자들이 "차라투스트라여! 우리 불구자들을 설복해야 하는 것이지! 눈먼자를 고쳐 볼 수 있게 하고 절름발이를 고쳐 걷게 할 수 있어야 당신을 믿고 따를 올바른 방법이리라!"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곱사등이에게서 그의 혹을 떼어낸다면, 그것은 곧 그에게서 넋을 빼앗는 것이 된다. 이런 것은 하찮은 불구일 뿐이다."

"나 이보다 더 고약한 것을 보고 있으며 본 일도 있다. 하나를 너무 많이 갖고 있는 대신에 그 밖의 다른 것은 전혀 갖고 있지 않는 자들, 하나의 커다란 눈이거나 하나의 커다란 주둥이거나 하나의 커다란 배 아니면 또 다른 커다란 어떤 것일 뿐, 그 이상이 아닌 자들 말이다." 딱 영화 <RAIN MAN>의 형같은 사람이고 이 형의 직업은 자동차 사업가 입니다. 저 또한 시선을 조금만 바꾸어 봐도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불구자 인겁니다. 우리 모두 또한 그렇습니다.


<구제에 대하여>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을 요약해봤습니다.

1. 구제 부분은 성경의 패러디라 생각. 짐을 덜어주고 죽은 자를 살리고 주린자를 먹이고...

2. 불구자를 정하는 기준을 재설정. 가르침만 주는 구원자마저 좋은 건가? 하나에 빠져있는 전문가 아닌가?

3. '있었다'를 '원했다'로 바꾼게 구원? => 내구원은 차라투스트라가 아니라 불구자 자신에게 있다.

4. 의욕과 의지 -> 코나투스의 실현. 운동과 비율 = 힘의 관계, 이종인식.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다만 시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5. 기본적으로 고통이다. 곱사등이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것만 보는 자. 불구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보는자. 이렇게 이분법 한쪽에 서는 것이 "고통". 시간성은 어찌 할 수 없을 만큼 나에게 주어진 것. => 이것이 고통이 되면 "원한감정"이 된다. 그러면서 "자기부정"이 된다. [세상에 대한 분노 <=>자신에 대한 가책]을 왔다갔다. 이것을 넘으려면 "자신의 자표를 구체적으로 정확히 볼 수 있어야 이 지점에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후에 뒷장에서 미래지향적 = 중력의 영, 곱사등이, 앉은뱅이든 자신의 시각이 있다. = 창조. = 나를 긍정한다는 것이 이러한 상황마저도 원하는 것. = 극한의 아모르파티.

"더 나아진다."는 전제가 고정되어있다. 그래서 "더 나아진다는 것보다 더 달라질 수는 있다."

모든 족쇄가 풀려나면 우리가 행복할까? 아니다. = 족쇄가 풀리면 이 세계에 대한 허무주의와 냉소가 만연해 지고 불안과 공포의 바닥에서 우리는 자꾸 현재를 희생시키면서 "행복사냥"만 하며 살것임. 그래서 VISION이 중요하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어한다. = 힘의 의지.

주인을 다 케어하면 주인은 "노예없으면 못살아." =>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그렇다면 어떻게 나도 주인이면서 상대도 주인으로 나를 고양시키고 상대를 고양시킬수 있는가?


<학자들에 대하여>부분에서 제가 장애인활동지원을 하고 있는 이용인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되서 중간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구제에 대하여>가 잘 와닿았습니다. 사진으로 늦은 후기를 마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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