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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 세미나> 옹정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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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유진 작성일19-04-21 23:37 조회2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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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이치시다의 옹정제를 읽으며 옹정제와 옹정제 치세에 대해 세미나를 2회에 걸쳐 가졌습니다.

 

장장 61년의 강희제의 치세를 마치고 45세에 왕위에 오른 옹정제는 철두철미한 사람이었습니다. 형제들과의 힘겨운 후계자 다툼을 거쳐 왕위에 오른 옹정제는 백성과 자기 신념을 위해 불철주야 격무에 시달리며 노력한 황제였습니다. 이치시다는 이 옹정제의 시대를 선의(善意)의 독재정치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1) 옹정제의 천명

옹정제는 만주족으로의 정체성과 중국황제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200만 이라는 적은 숫자로 문화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앞서있던 2억 한족 중국을 다스려야 했던 만주족의 지배계층에게는 만주족의 통치를 어떻게 영속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에 옹정제는 명청 교체의 혁명은 천명(天命)이고, 중국의 어느 황제보다도 훌륭한 정치를 하여 중국역사 어느 때보다도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만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하다면, 천명을 다하는 중국의 군주로 정당성을 갖는다는 것이 옹정제의 신념이었습니다.

 

(2) 옹정제의 정치

덕망 높은 유교군주였던 아버지 강희제의 치세는 외치와 내치 모두에서 높은 성과를 보였지만 한편 보스정치의 시대였다는 것이 이치시다의 의견입니다. 보스 정치는 전통 중국의 관료제 시스템입니다. 옹정제는 권력을 관료제라는 시스템과 나누었을 때 생기는 폐단을 극복하고자. 과거제를 통한 구축되는 관료 시스템은 붕당을 만들게 되고 국가 전체의 이익 보다는 붕당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게 됩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부패와 소수세력에 부의 집중이 일어나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옹정제는 주접과 밀정, 청렴한 관리의 등용을 통해 황제 자신이 만주족 특유의 성실함과 치밀함으로 관리함으로써 이 관료시스템의 맹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분분투 하였습니다.

 

옹정제의 독재 정치는 중국 국민들에게 비극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양심적이고 선의에 넘치는 독재정치라고 하더라도 옹정제 정도 되는 군주는 잘 나타나지 않고, 오래 지속되기 않습니다. 중국인들은 이런 좋은 독재 정치를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독재 정치에 대하 관용적이 되고 새로운 정치 양식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면에서 비극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청나라 초기의 황제들은 각각 참 매력적인 인물들입니다. 여러 샘들과 이들의 삶과 정치에 대해 같이 읽고 얘기하는 것이 즐겁고 재미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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