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일반세미나 일반세미나

[일리치 읽기] 4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이달팽 작성일19-03-10 21:08 조회66회 댓글1건

본문


이반 일리치 4주차 후기




이번 주에는 <학교 없는 사회>를 마저 다 읽었습니다!

책 후반부- 4장에서는 ‘제도’에 대한, 5장에서는 ‘학교 비판’에 대한, 

6장에서는 공부 네트워크에 대한, 7장에서는 근대화된 인간에 대한, 일리치의 새로운 통찰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동권샘이 말씀하시기로, <학교 없는 사회>의 “정수”인 7장은 “에피메데우스적 인간의 부활”이었는데요,

일리치의 “정수”는 역시- 저희를 뎅- 쳤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4장 “제도 스펙트럼”도 무척 재밌었습니다. 일리치는 우리 사회에 있는 여러 제도들을 ‘공생적 제도와 조작적 제도’라는 스펙트럼에 놓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공생적 제도는 인간의 활동과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제도입니다. 오직 사용되기 위해서 존재하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자발적으로 이용이 가능한 것, 우편제도, 상하수도, 공원 같은 것들입니다.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이 조작적 제도인데요, 이 제도들은 무언가 ‘생산’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일리치가 생각하기에 학교는 이 조작적 제도의 제일 끝에 있습니다. 학교는 제도를 소비하는 인간을 ‘생산’합니다. 이런 제도들은 사람들에게 제도 자신의 필요를 강요합니다. 무언가를 생산하면서 수요도 함께 생산한다는 것이죠. 


일리치는 상품의 역할은 우리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상품으로 무언가를 하는 기회를 제공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생각할 때, 즉 ‘발전’에 대해 생각할 때 ‘조작적 제도’의 성장을 생각하죠. 일리치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인간은 물질을 풍부하게 가지고 살든가, 아니면 그것을 사용하는 자유를 풍부하게 가지고 살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요. 그러니 우리의 ‘발전’은 ‘우리’의 발전이 아니라 상품의 발전인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물건을 만드는 활동이나 사람들을 조작하는 활동보다도, 인간적 활동 그 자체가 더욱 높은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 <학교 없는 사회> p192


이에 일리치는, “인간적 활동” 자체의 가치를 말합니다. 이 인간적 활동이라는 게 뭘까요? 우리는 정말 무언가를 생산하지 않으면 그 활동에 가치를 잘 부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과정을 지나면 그 결과로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한다는 ‘신화’를 뿌리 깊게 가지고 있는 것이겠죠. 우리의 삶 자체에 대해서도 그렇게 평가하기 쉬운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있는 어떤 활동이 어떤 가치 있는 물건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치 있는 나를 생산해내야 한다는 생각. (그 때문에 사람들은 적어도 학교를 다니는 시절에는 안심하며 살아가는 것이겠죠.) 일리치는 이런 우리에게 활동 자체를, 삶 자체를 가치 있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윤언니는 발전이 기술관료의 통제와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자유가, 전문가가 묶은 상품 중에 선택하는 것이라는 대목이 재밌었다고 했는데요. 그런 게 자유가 뻔히 아닌데도 그렇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우리 인간들에게는 삶도, 자유도 조작적인 것이 된 것이죠. 


그 이야기가 바로 “정수”인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데우스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일리치가 말하는 프로메테우스는 기대하는 인간, 에피메데우스는 희망하는 인간입니다.


“희망이란 자연의 선을 신뢰하는 것임에 반해, 내가 여기서 말하는 기대란 인간에 의해 계획되고 통제된 결과에 의존함을 뜻한다. 희망이란 우리가 선물받기를 기대하는 상대에 대해 바람을 갖는 것이다. 기대란 우리가 자신의 권리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예측 가능한 과저에서 오는 만족을 즐겁게 기다리는 것이다.” -<학교 없는 사회>p200


일리치는 현대의 인간이, 각종 문제들을 악으로 여기고 ‘판도라의 상자’에 가두면서 인간 자신도 상자에 같이 갇힌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희망은 그 상자 바깥에 있구요.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은 자신의 모든 욕구를 위해 어떤 제도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이 세계에서는 가능성이 곧 생산이고 생산이 곧 수요의 창출입니다. 무언가 생산이 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겁니다. 


다윤언니는 사이트에서 각종 신기한 물건들을 보면 사고 싶어진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를테면 종이에 뿌리면 방수가 되는 방수 스프레이 같은.. 원래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 필요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고..(결론은, 샀다고..ㅋㅋ) 


일리치는 달에 가는 수송수단이 고안되면 달에 가는 수요가 창출된다는 예를 듭니다. 그러면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해도 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역전된다고 말합니다.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해도 가지 않는다”, 현대인에게는 이런 감각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데 안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요. 고속 수송수단이 그 예일 것 같습니다. 인간의 기술은, 인간의 더 빠른 수송수단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실제로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그 수송수단이 가지고 오는 결과는 속도뿐만이 아닙니다. 결국 사회 전체로 봤을 때에는 기동성 자체는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다른 상품들-기름, 고속도로 등-의 수요를 가져옵니다. 끊임없는 소비의 고리! 인간은 언제 멈춰야할지를, 모릅니다.


일리치는 우리에게, 기대가 아닌 희망에 가치를 두는, 상품보다는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 에피메데우스적 인간이 되는 것에 인류의 생존이 달려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이 그 “정수”에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속 함께해야 할 질문이겠죠.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김삼봉님의 댓글

김삼봉 작성일

에피메테우스적 인물을 읽고서 한참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막 흥분해서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었는데 ㅎㅎ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인간의 활동이 상품보다 더 중요한 사회 .. ! 앞으로의 일리치 세미나가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