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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리수s5]7주차 보이체크 당통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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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눈보라1 작성일18-11-27 14:33 조회7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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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뷔히너.

이번 시즌을 통해서 접한 낯선 이름이었다. 특별한 호기심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서 놀랐다.

19세기 초 작품인데, 21세기 감성에도 전혀 낡지 않았다. 이런 게 연극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극이 주는 긴장감, 일상적 대화가 아닌 극적 대화, 독백들. 그 속에 담긴 날카로운 삶의 진실들. 페이소스.


두 작품 모두 1794년 프랑스 혁명 전후의 농민의 가난을 생생히 보여준다. 밤낮으로 일하는 이들은 왜 가난하고 놀고 먹는 귀족들은 왜 늘 흥청망청인걸까? 전제 군주, 봉건제의 모순이 가장 잘 나타나는 지점이 백성의 가난일테고... 그래서 혁명의 시대를 맞는다. 보이체크는 단순히 귀족 뿐 아니라, 당시 신사계층이라고 할 만한 의사, 변호사, 금융인 등등도 가난한 민중을 어떻게 보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시기의 혁명은 민중이 진정한 주체는 아니었고, 부르주아 혁명이라 한다.


아무튼 이 시기 부르주아는 수적으로 많은 계층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신흥계층이었고, 이들은 합리와 계몽이라는 이념을 내걸고 근대자본주의 국가와 그 국가를 떠받치는 제도들을 만들어내고 결국 20세기의 주인이 된다. (물론 그 사이에 맑스와 공산주의 혁명 냉전 등의 사건이 있긴 했지만.)


뷔히너가 당통의 죽음을 통해 그려낸 혁명기의 프랑스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1막에서 에로는 혁명에 대한 신념, 정의의 이름으로 계속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단두대로 보내고 있는 로베스피에르 일당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그들은 우리를 원시인으로 만들려는 거야...언제까지나 관을 요람으로 삼고, 머리 자르는 놀이를 계속해야 하나?...혁명이 중단되고, 공화국이 시작되어야 해. 헌법 조문에 의무 대신 권리가, 덕목 대신 복지가, 처벌 대신 정당방위가 들어가야 해. 누구나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아야 하고, 자신의 본성을 관철할 수 있어야 해. 개인에게 분별력이 있든 없든, 교양이 있든 없든, 개인이 선하든 악하든, 국가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 우리는 모두 바보야. 아무도 자신의 독특한 어리석음을 남에게 강요할 수 없어. 누구나 나름대로 인생을 즐길 수 있어야 해. 하지만 누구도 남의 즐거움을 희생시키며 즐겨서는 안 되고, 남의 고유한 즐거움을 방해해서는 안 돼.”


카미유는 에셀의 말을 이렇게 받는다.

우리는 벌거벗은 신들과 바쿠스의 무희들 그리고 올림포스의 유희를 원해. 그리고 , 온몸을 녹이는 사악한 사랑이여!’라고 노래하는 입술을 원한다고..."

이어서 그는

저 신적인 에피쿠로스와 엉덩이가 아름다운 베누스가 성자 마라와 샬리에 대신에 공화국의 수문장이 되어야 해.”

라고 말한다.


굶주리는 민중의 모습과, 이런 말을 하며, 부유하고 지적인 여성들과 결혼하여 풍족한 삶을 살고, 쾌락을 추구하는(실제 창녀들과 놀아나는) 당통 일파(에로나 카미유를 포함한)의 모습을 대비해 보면, 그들을 단두대로 보낸 로베스피에르가 정당한 걸까?(물론 사형제도도 폐지되어가는 지금 와서 단두대를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보편적 정서에 맞지 않지만, 그때는 혁명기였다... 단두대를 차치하고라도 그의 '신념'은 옳은 것일까?)

그러나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 힘들다. 사람이란 언제나 공공선을 추구하고, 검약 절제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존재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이란 필연적으로 현실의 불의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 현실로부터 한 발 물러나 있지 않을 수 없고, 유희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그래서 한용운도 이렇게 썼다.

"아아 왼갖 윤리(倫理), 도덕(道德), 법률(法律)은 칼과 황금을 제사 지내는 연기(烟氣)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永遠)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人間歷史)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서릴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당신을 보았습니다 중 - 한용운)


요기에 '술을 마실까'라는 거... 한용운 같은 사람도 이것을 망설여야 한다면, 하물며 필부필부들은 당연한 것 아닌지. 그리고 이런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결국 궁극의 선은, 혁명은 이러한 본성까지 안고 갈 수 있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혁명기 미덕을 집약시킨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모범생이미지를 지닌 로베스피에르는 극단적인 미덕이 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인생도 혁명도 간단하지 않고, 또한 본질적으로 비극적이지만, 그렇기에 재미있고 그렇기에 또한 희극적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아무튼 뷔히너가 해석한 당통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당통은 혁명과 정의, 도덕과 미덕, 노동과 예술이라는 오래된 문제에 대한 고뇌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에피쿠로스주의자라고 말하는 당통,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기쁨을 찾아 산다는 그의 단언에 우리는 쉽사리 반론을 펼치기 힘들다.


권력이든, 제도든, 규율이든, 아니 결국은 그 모든 것의 본질에 놓여 있는 삶의 비극적 조건이든, 이에 대해 반항하고 도전하는 인격들을 만날 때 나는 설렌다.

우리가 보잘 것 없는 존재 천둥벌거숭이 무방비상태로 세상에 팽개쳐져서 상처받고, 병들고,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다 결국엔 죽어가는 존재임에도— 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앎에도 운명에 도전하고, 고귀한 영혼의 성장, 존재를 넘어서는 사랑을 꿈꾸는 그런 사람들. 뷔히너의 당통이든, 괴테의 파우스트이든, 베르테르든 캐서린이든, 에이허브이든, 마크트웨인이든, 오스카 와일드이든...



스물넷 젊은 나이에 장티푸스로 숨진 20대의 뷔히너가 남긴 불꽃같은 작품들을 읽을 수 있었던 데 감사한다. 단 세 편의 희곡만으로 후대 연극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그의 작품을 무대에서 한 번쯤 보게 될 날이 살아 생전에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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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나영님의 댓글

나영 작성일

반항하고 도전하는 인격들에 설레신다니~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