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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5주차 후기- E 오스만식 도시 개조, 바리케이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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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석영 작성일18-09-24 22:22 조회1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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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오스만식 도시 개조, 바리케이트전




오스만은 1850년~1860년 경, 나폴레옹 3세 치하에 파리의 도시 개조를 시행했습니다. ‘몇 세기에 걸쳐 해야 할 일을 불과 10년 안에 해치우려 했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오스만의 도시개조는 과격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지금도 파리라는 도시의 대표적 특징으로 이야기 되는 것 중 하나가 도시 전체가 한 눈에 조망되는, 모든 길이 중앙에서 뻗어나가는 모양을 하고 있는 도로망인데요. 그 독특한 도로망이 바로 오스만의 작품(?) 이었습니다. 그러한 도로가 지금 우리 같은 관광객들에게는, 단 며칠만에, 아니면 정말 한 눈에 내가 이 도시를 파악하고, 정복하고,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매력적인 요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오스만이 파리의 도로망을 이렇게 만든 것은 당시 파리에서 민중 봉기가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그들(혁명군)이 어디서 오고가는지를 한 눈에 파악하기 위해서, 골목 등 숨을만한 공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중앙에서 도시의 모든 부분을 한 눈에 들여다보고 통제하는 것이 용이하도록 만든 구조라는 것입니다.




오스만의 설계도는 완전히 자의적인 것이었다. 도시 계획에 기반한 엄밀한 결론이 아니었다. 재정적·군사적 차원의 처리였다.” 르 코르뷔지에, 『도시 계획』, 파리, <1925년>, 250페이지.

[E 2a, 1]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새물결, p.372



 이것은 대단한 중앙집권에 대한 욕망을 보여주는데요. 실제로 오스만은 파리가 프랑스의 수도가 아니라 ‘세계의 수도’가 되어 세계의 예술, 문화, 자본 등 모든 것들이 파리로 흘러들어오길 바랐다고 합니다. 책에는 그것을 ‘과대망상’이라 표현한 글도 있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파리라는 도시의 위상을 살펴보면 그걸 그렇게까지 무리수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오스만의 도시 개조로 인해, 원래 파리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겨났을까요?




(...)중앙 집권화, 과대망상벽이 인공의 도시를 만들어, 이제 파리 사람들은 이 도시 안에서 더 이상 편안한 느낌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따라서 틈만 나면 사람들은 떠난다. 그리하여 휴가 강박증이라는 새로운 욕구가 생겨났다. 반대로 주민들이 떠나간 도시에는 정해진 시기에 외국인들이 도착한다. ‘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국제적 교차로가 되어버린 자신의 도시에서 파리 사람들은 마치 뿌리 뽑힌 것처럼 보인다.” 뒤베크/데스프젤, <파리의 역사』, 파리, 1926년>, 427/8페이지.>

[E 3a, 6]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새물결, p.400



프랑스 사람들은 긴~ 바캉스 문화를 자랑하며, 그들의 복지제도를 자랑하는데요. 80년대에 벌써 1년에 2주 유급휴가 제도를 도입했고, 요즘은 매 년 한 달 정도를 여행기간으로 둔다고 하지요.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모든 것에 손을 탁! 놓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휴가 강박증’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떠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어서 떠나는?! 그 이유는 그들이 이제 자신들의 도시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망이 용이한 도로망은 한 눈에 도시를 파악하기는 쉽지만 골목의 다양성은 없애버리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삶으로 따지면 무의식의 영역을 없애버리고 이성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파리는 점점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터전이 아니라 커다란 소비 시장, 거대한 노동 현장, 온갖 야심의 투기장이거나 아니면 그저 만나서 즐기는 장소’ 쯤으로 변해갔습니다. 얼핏 들으면 굉장히 활발한 도시처럼 보일지 몰라도, 우리는 이것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돈을 벌고,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먹고 자는 생활이 중요하며 사실은 또 그 사이사이에는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고, 숨을 돌리고 멍을 때리는 시간 등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계획하지는 않지만 그냥 그런 시간들이 존재하며, 또 필요하다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을 좀 더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겠지요. 시간에서 그렇듯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집과 일터뿐만 아니라 그 사이를 이동하기 위해 우리가 지나다니는 길, 또 그 길 주변으로 우리가 다 알지 못한다고 남겨두는 영역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를 ‘이 땅에 살고 있다’고 인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곳이 ‘빛의 영역’으로 존재하는 파리는, 그곳을 사는 사람들에게 ‘쉬고 있는 공간-예를 들면 우리가 모두 파악할 수 없는 골목길 등-이 없다’는 점에서 피로감을, 자신들이 이 곳을 모두 알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더 많은 것을 봐야 한다’는 강박을, 어디에도 뿌리내릴 수 없다는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지금의 자본주의사회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뭐든 가장 합리적으로 판단하고자 하고, 계획하려고 하고, 또 인생을 그렇게 계획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계획을 하면 다른 변수들이 생기지 않고, 그대로만 실행하면 될 것처럼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우리를 지상에서 붕-뜬 상태로 만들어버립니다. 사실 삶의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먹고 자고 걷고 숨쉬고 멍때리는 시간들을 삶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자꾸만 뭔가 더 많은 것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파리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듯, 자꾸 지금-여기를 떠나 부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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