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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학세미나] 시몽동 읽기 - 2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푸른달 작성일18-06-07 12:32 조회24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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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시몽동과 만나기 전에 그가 영향받은 베르그손과 바슐라르에 관한 참고텍스트를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시몽동도 처음 들어봤는데 그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철학자들도 낯선;; 우리를 위해 근영샘께서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베르그손, 바슐라르 정리를 잠깐 하고 시몽동의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 서론 부분을 정리하겠습니다.


[베르그손]


- 슬며시 스며들고 침투하여 이어진다: 시간

먼저 우리가 시몽동을 이해하기 위해 베르그손에게서 주목할 지점은 그의 ‘지속’ ‘시간’ ‘물질과 생명’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베르그손의 연속적 개념으로서의 시간을 배웠습니다. 과학이 시간의 질을 항상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분할, 구분 가능한 공간적인 것으로 바라보았죠.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분명 그러한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공간화된 시간이 곧 시간이라 착각합니다.(방학생활계획표를 지킬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베르그손은 이를 지적하며 우리가 매 순간 마주하는 시간은 연속되어 있다고 했지요.

- 나와 키보드, 우리는 모두 파동이다: 파동으로서의 의식과 물질

시간의 연속성에서 비롯한 ‘지속’개념은 물질로 확대됩니다. 베르그손은 물질과 생명 모두를 ‘파동’으로 칭합니다. 이는 분할 가능한 공간적 개념과 대립되는 것으로서 물질과 의식의 ‘지속성’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의식은 이해되는데 물질도 파동이라니 조금 생소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의 지각이 물체의 경계를 만듭니다. 어디까지를 입술로 볼 것인가… 그 경계는 만화책에 등장하는 선처럼 그리 명확하지 않습니다. 물질과 의식 모두가 지속성의 선상에서 파동을 이룬다고 할 때 우리는 질문이 생겨납니다. 의식을 가진 나도 파동이고 내가 지금 두드리는 키보드도 파동이라면 의식과 물질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거지? 베르그손은 나와 키보드의 차이는 단지 파동 리듬의 차이인데 균일하게 반복적이라면 물질, 계속해서 이질적인 차이를 만들어 운동하는 리듬이라면 의식이라고 합니다. 베르그손의 파동 관점에서는 의식- 물질은 주관-객관의 이분법적 관계를 무너뜨리고 지속성의 개념 속에서 서로 어우러집니다.

- 생명 개체의 지속성, 진화라는 사건

베르그손은 물질적 체계와 생명적 체계를 구분하는데요. 과학에서 다루는 물질체계- 실험을 위해 인위적으로 닫힌 체계-를 생명체의 자연적 체계와 구분합니다. 생명체의 자연적 체계는 개체의 범위와 종의 범위로 살펴볼 수 있는데요. 우리 각자의 (생명)개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과거를 쭉 보존하여 생로병사의 과정으로 하나의 역사를 이룹니다. 즉 생명체는 침투하는 시간과 뒤엉켜 지속합니다. 이렇게 지속하는 생명체는 눈덩이처럼 굴러가면서 환경과 다른 생명체들 등과 상호작용하며 숱한 우발성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발성을 만난다는 것, 곧 사건을 경험하는 것으로서 생명체는 변화합니다. 종의 변화는 말그대로 다른 존재로 화(化)한다는 것으로 이전의 종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의 탄생을 뜻합니다. 베르그손에 의하면 원숭이가 차츰 차츰 변하여 인간이 된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단계가 있다면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어느 정도 단계에서 원숭이가 인간이 될 지 우리는 예측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베르그손이 바라보는 진화에서 시간은 매우 적극적으로 무대 전면에 등장합니다. 진화라는 사건 그 자체가 시간을 의미합니다. 시간은 진화라는 사건 뒤에 무심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생성될 때, 즉 어떤 변화가 일어날 때 바로 그 변화가 시간이며 그것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 창조적 진화

우발성의 맥락에서 앞서 배운 물질과 의식을 가르는 그 ‘리듬’의 차이를 이렇게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균일한 물질의 리듬과 ‘우발성의 개입으로 이질적 운동을 나타내는 생명의 리듬.

베르그손에 의하면 물질의 반복적 파동 리듬은 법칙으로 만들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체계입니다. 그는 물질의 반복적 리듬(물질의 필연성)에 불확정성(예측불가능성/변화가능성/우발성)을 삽입하면 생명이 생성된다고 말합니다. '생명은 물질과 관계없이 자족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필연성 위에서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프랑스현대철학사, 33페이지)으로 창조됩니다. 물질의 균일한 리듬과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해체시키면서 생명은 생성됩니다.


[바슐라르]

본체론 : 실체- 현상의 이분법을 깨는

원래 원자론은 과학에서 미시세계를 이해하는 개념틀이라는 도구로서 등장하였는데 원자론이 생겨난 이후 실제로 원자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어떤 가설을 현실에 실현할 때 그 가설은 본체를 설명하는 이론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바슐라르의 본체론입니다. 바슐라르의 본체론은 실체 vs 현상의 이분법을 깨면서 새롭게 만든 개념으로 확실한 감각 경험만을 사실로 인정하는 과학의 실증주의를 넘어섭니다. (프랑스현대철학사, 46페이지)

양자론이라는 이론이 등장하고 이후 실험으로 그것을 구현하는 것, 합성으로 어떤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냈다는 것 등 어떤 현상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그 현상의 본체를 완전히 안다는 뜻입니다. 바슐라르의 본체론은 본체를 구성해내는 것이 이미 자연 속에 있던 어떤 것의 발견이 아닌 창조의 영역으로 바라봅니다. 따라서 본체론이 바라보는 과학은 기술적 도구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학문이지 자연이 이미 가진 원리를 밝혀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실증주의 vs 형이상학의 대립 구도를 해소하는 것으로 창조-인식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이로서 도구는 곧 인식이며 이론이 되는데 이는 도구가 어떤 수학적 원리에서 나온 사실을 검증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원리나 이론의 대상 자체를 만들어내는(창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생각해서 원자가 원래 있었는데 과학자들이 이를 발견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원자론이 원자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시몽동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 서론]

시몽동의 개체화는 무엇을 고민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지요.

먼저, 개체는 무엇이고 존재자는 무엇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개체, 존재자

개체는 더이상 쪼갤 수 없는 것. 마치 시간처럼, 공간적으로 분할할 수 없는 것을 하나의 개체라고 봅니다.

존재자는 무엇인가? 그대로 풀면 ‘있는자’가 되지요. 그러나 이것은 물질을 가지는 여부가 아닙니다. 누군가는 살아있어도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자처럼 여겨지고 누군가는 죽었어도 나에게 계속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사람이 나에게 존재자로 인식되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되는 (난 너 아니면 안돼애!) 어떤 지점을 발견할 때입니다. 그것다움, 그다움이 존재자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시몽동은 이렇게 말하지요. “존재자의 생성이란 바로 그것에 의해 존재자가 그러한 모습인 한에서 그러한 존재자로 되는 것”(42)

이를 바탕으로 시몽동의 ‘개체화’란 ‘우리가 분할 불가능한 개체로서 존재자가 되는 과정’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물음으로 바꾸면 ‘나는 어떻게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가?’에 대한 탐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개체적인 것의 의미

앞서 우리는 베르그손을 공부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종이 생겨나는 진화를 우발적 사건으로서 이해했고 물질에 불확정성을 주입하는 것이 어떻게 생명 창조로 이어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정말 새로운 것의 탄생이라는 문제 즉 다른 말로 하면 개체의 탄생일텐데요. 이를 시몽동은 전개체적인 것에서 찾은 것 같습니다. ‘전개체적인 상태’는 개체에 앞서는 것으로 개체가 생겨나는 장입니다. 정보의 측면에서는 아직 그 어떤 상(패턴)도 만들어지기 전이므로 엔트로피가 가장 높은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고 입자이며 파동인 양자적 상태로도 이해해 볼 수 있다.

“전개체적 존재는 상이 없는 존재이다. 개체화가 그 안에서 수행되는 존재는, 존재가 상들로 분배됨에 의해 그 안에서 해소가 나타나는 그러한 존재이다. 이것이 바로 생성이다. 생성은 존재자가 그 안에서 존재하는 틀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차원이며, 퍼텐셜들로 가득한 초기의 양립불가능성의 해소 양태이다. (…)그것은(개체화는) 생성이 없는 존재의 최초의 과포화로부터만 이해될 수 있다.”(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 42-43)

초기의 양립불가능성의 해소로 생성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거꾸로, 양립불가능성을 가져야만 생성이 가능하다고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즉 내 안에 양립불가능한 어떤 것들의 팽팽한 긴장상태야말로 나를 새롭게 생성의 차원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나라는 개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관성적 습속들만 무한 반복한다면 마치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 정지된 무대의 시간처럼 그 어떤 힘도 존재하지 않는 따라서 그 어떤 생성도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이지요.

생성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예측 불가능한 리듬을 생성한다는 것이고 이 불확정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지점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은 이질적인 힘들을 필요로 합니다. 시몽동은 이런 이질적인 힘들, 나와 양립불가능한 힘들이 내 안에 존재한다고 보고 이를 전개체적인 것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체화는 전개체적인 것이 가진 과포화 상태의 힘에서 가능합니다. 과포화 상태란 언제라도 무엇이든 원하는 모습으로 결정화가 가능한 것으로 그 안에 관성적 나와 그런 나를 배반하고자 하는 나의 팽팽한 긴장에 의해 생겨나는 힘이 꽉 들어찬 상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개체적인 것의 과포화 상태가 우리를 그 어떤 것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힘이라면 그것은 개체가 가진 최고의 능력일테고 그 능력이 바로 자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드디어 시몽동을 읽었는데 저는 비록 이해는 못해도 멋있는 말이 많이 나와서 좋았어요. 좋았던 부분들을

공유하며 마무리합니다.


개체로부터 개체화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화로 개체를 탐구하고자 하는 것. (41)

개체화를 개체-환경의 쌍으로 보는 것.

최대 엔트로피를 가진 잠재테로서의 전개체적인 단계

사람들이 평형은 안정적인 것만을 생각한다. 준안정적 평형이 있을 수 있다는 것! (44)

개체화의 원리를 이원성을 해소하는 중개이며(생명체는 정보 소통의 끈)(49) 경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한다는 것 (47)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면서 (환경과의 관계를 변형하면서) 문제 해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변형하면서, 새로운 내적인 구조들을 발명"하면서 해결한다고 하는 것 (48)

생명체는 단일성 이상인 동시에 이하인, 문제적 존재자로 제시된다. 생명체는 생성을 따라 존재하며 매개를 작동시킨다. 생명체는 개체화의 행위자인 동시에 무대이다! (52)


나가려는데 어제 세미나 끝나고 집에 가면서 우연히 보게 된 지하철 시. ㅎㅎ 적절한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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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회색인님의 댓글

회색인 작성일

꼼꼼하게 정리를 잘 해주셨네요^^

세미나에서 놀라웠던 부분을 두가지만 언급하자면,
(1) 나와 사물이 파동으로 이어져 있다.
(2) 생명이 물질을 변화시키고 생명 자체도 변화시킨다.

하지만 자유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이 필요할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건 실천이니까요^^변신 GO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