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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반짝 세미나> 안전 영토 인구 3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코스모스 작성일18-01-25 14:29 조회611회 댓글4건

본문

푸코는 6.7강에서도 사목에 대한 분석을 계속합니다.


사목은 목자와 무리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신과 인간의 관계, 주권자와 신민의 관계에 대한 것이지요.

사목에 대한 사유는 그리스도교 이전과 이후로 나눠서 말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문헌, 사유에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오뒷세이아등에서 왕을 의례적으로 목자라고 칭하는 예를 볼 수 있습니다. 피타로라스 학파에서도 행정관을 목자로서 배려와 열의에 충만한 자로 말합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그리스적 사유에서 목자에 대한 은유는 희귀합니다. 심지어 플라톤은 정치가에서 정치는 목자-무리의 관계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플라톤에게 정치가란 정치가로서의 행위를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인식과 기술을 통해 정의되는데 이는 바로 명령하고 지휘하는 기술입니다. 정치가는 생명존재에게 자신의 명령을 전달합니다. 이 때 정치가가 하는 일은 목자가 하는 많은 일-식량을 조달하고 보살피고, 치료하고 교배를 조절하는 등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사, 의사, 빵집 주인같은 이들의 일이며 플라톤에 의하면 자질구레한 일로서 정치가의 일은 아니라는 거지요.

신화의 시대에는 신들이 인간의 목자였습니다. 자연이 모든 것을 주었고 인간에게는 정치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행복한 시간이 끝나고 세계가 역방향으로 돌 때 신들은 후퇴하고 인간은 서로를 인도해야 합니다. 이제 정치와 정치가가 필요해집니다. 이 정치가는 목자가 아니라 직조공이어야 합니다. 정치가는 목자처럼 모든 것을 총괄적으로 돌보는 이가 아닙니다. 정치가의 행위는 씨줄과 날즐을 엮는 것과 같이 사람들을 서로 엮어주는 기술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행복으로 인도해야 한다고 플라톤은 말합니다.

진정한 사목의 역사는 그리스도교와 함께 시작된다고 푸코는 말합니다. 기원후 2~3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교회제도를 통해 다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권력장치가 형성됩니다. 사목을 통해 인간을 통치하는 기술을 나지안조스의 성 그레고리우스는 기술 중의 기술, 지식 중의 지식으로 정의합니다. 그 이전에는 무엇이 기술 중의 기술, 지식 중의 지식이었을까요? 철학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학도 아닌 사목이 그 지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관계/자체의 법, 규정, 절차, 기술을 갖는 제도화되는 일정 유형의 관계입니다. 즉 사목관계는 모든 관계의 근본이며 교회조직의 근간이 됩니다. 교회의 모든 권력은 무리에 대한 목자의 권력으로 부여되며 정당화됩니다. 그리고 이 사목적 통치는 정치권력과 분리된 채 남아 있었습니다. 단순히 영혼의 인도가 아니라 일상의 관리, 재산, , 사물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을 포함하는 한에서의 영혼 지도입니다. 즉 하늘을 목적으로 하는 땅의 권력으로서요.

사목은 그리스도교의 사유를 통해 의미가 풍부해지고 제도화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사목은 다음의 특수성을 갖습니다.

첫째, 구원과 관련됩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는 극도로 미세하고 복잡한 관계입니다. 목자는 만인의 구원을 확보해야 하며 개인 각각을 구원해야 합니다. 단 한 마리의 양도 이 지도행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목자는 각각의 양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데 양의 수적인 면만이 아니라 질적이고 사실적인 모든 것에 대해 책임(분석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고 양의 모든 활동을 자신의 고유한 활동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즉 양의 공덕과 과오는 목자에게 철저히 즉각적으로 전이됩니다. 양이 길을 잃으면 목자는 양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이 희생으로 양이 해방된다면 목자는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교대적 대응의 원칙- 목자의 약함이 무리의 구원에 기여할 수 있고 무리의 약함이 목자의 구원에 기여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관계를 통해서도 구원은 확보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신에게 달린 문제지요. 그 수완이나 공덕이 아무리 대단하여도 목자는 양떼와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는 확신을 갖지 못한 채 공덕과 죄과의 도정, 순환, 역전을 관리해야 합니다. 이를 푸코는 공덕과 죄과의 경제라고 부릅니다.

둘째, 법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법과 설득에 의해서만 지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사목은 순수한 복종의 심급을 조직합니다. 그리고 이 관계는 전면적 의존관계입니다. 이 의존관계는 법이나 이치, 질서에 합치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개인에게 하는 복종관계이며 영적인 것 뿐 아니라 일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에서도 목자의 수중에 자신을 온전히 맡깁니다. 이 속에는 부조리함이 있습니다. 부조리하지만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즉 법과 단절하는 시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관계에는 최종목적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교의 복종은 복종적이 되기 위해 그저 복종합니다. 그 결말은 겸손입니다. 자신의 모든 의지가 나쁜 것임을 아는 것, 자신의 의지를 죽이는 것, 누군가 자신에게 명령하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복종이야말로 사목 관계가 전개되는 공간의 특징입니다. 개인의 개인에 대한 복종의 실천이 있고 예속-봉사의 계열이 만들어집니다. 인도를 받는 자는 목자와의 관계를 전면적인 예속관계로 체험해야 합니다.

셋째, 진실의 문제가 있습니다. 목자는 자신의 공동체를 자신의 모범을 통해, 삶을 통해 가르칩니다. 이 때 가르침은 개인적입니다. 만인에게는 각자 다른 방식이 적용됩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은에는 일상적 품행의 지도가 불연속적으로 매순간 행해집니다.

목자는 단순히 진실만을 가르치지 않고 양심지도를 합니다. 고대의 양심지도는 본인의 의지를 전제로 특정 시기의 시련에, 유료로 행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기제어가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실천에서 양심지도는 의지가 아니라 의무이며 항구적이며 의존을 심화시키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매순간 양심점검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일정한 진실의 담론을 생산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과 독창성, 특수성은 구원, , 진실이 아니라 공덕과 죄과의 특수한 관계, 절대적 복종, 숨겨진 진실의 생산이라고 푸코는 말합니다. 그리고 사목과 함께 완전히 특수한 양태로 개인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개인화는 신분이 아니라 분석적 판별에 의한 개인화이며 예속의 네트워크 전체에 의해 작동하며 내밀하고 은밀한 진실의 생산에 의해 획득됩니다. 이 세 가지가 그리스도교의 사목과 관련한 개인화 절차의 특징입니다.

사목은 16세기부터 전개될 통치성의 단초를 구성합니다. 사목 고유의 절차를 통해서, 또한 위에서 말한 세 가지 개인화 절차의 특징에 따라 특수한 주체, 근대 서구의 전형적인 주체를 구성해냄으로써 통치성의 단초가 됩니다.


후기가 아니라 줄거리 요약이 되었습니다.  내용이 어려워서 정리마저도 잘 안 된 것 같습니다ㅠㅠ 철학이 갖는 지위를 어떻게 사목이 차지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7장은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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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무풍님의 댓글

무풍 작성일

잘 정리된 후기 감사해요~~
이번에 푸코가 강조한 점은 "(1)구원, (2)법, (3)진실--> (1)공덕과 죄과의 특수한 관계, (2)절대적 복종, (3)숨겨진 진실의 생산"으로 변모되어 그리스도교의 핵심이 된 것이네요.
개인적으로 그리스에서 학자들이 유료로 좌판을 놓고 양심지도를 판매했다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네요.

박주영님의 댓글

박주영 작성일

바다샘 후기덕분에 저번주에 다뤘던 내용 잘 복습할 수 있었어요.^^
3주차 세미나를 통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사목이라는 것이, 역사상 완전히 유래가 없는 어떤 과정, 다른 어떤 문명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어떤 과정과 같이 시작되었고, 이는 더욱더 섬세한 형태로 변화되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목에 반대하는 혁명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도 놀라웠어요. 생각해보니 우리는 오히려 복지, 안전 등을 통해 국가가 더 배려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즉 사목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계속 사목을 욕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정수님의 댓글

정정수 작성일

"사목"이 갖는 의미는 이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콩뒤트(품행)"은 이로움이나 해로움, 장점이나 단점이라는 양의적 의미를 갖는 단어다. 사목영역에서 품행상반란, 저항 등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이스도교(신)과 긴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김동권님의 댓글

김동권 작성일

사목의 사전적 의미는 사제가 신도를 통솔 지도하여 구원의 길로 이끄는 일이다. 뭔가 나를 '안전, 배려, 케어'해주는 그런 좋은 이미지었다. 그런데 결국 사목의 서비스를 받는 다는 것은 지속적이고 은밀하게 감시당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안전과 감시, 배려와 규율, 케어와 처벌이 사목이라는 서비스안에 다 포함된 것이다. 아직도 이 댓글을 쓰면서 믿어지지가 않는다. 다음 후기를 어떻게 써야하나 벌써부터 고민이다. ㅠㅠ
앗 바다샘 후기 정말 잘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