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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세미나

유목과 제국-동방견문록 두번째 시간

게시물 정보

작성자 우짜맘마 작성일17-12-31 15:58 조회110회 댓글0건

본문

여러분~ 모두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두번째 시간

모임 일시 : 2017. 12. 27. . 19~21. 쨍하고 추운 날

모임 장소 : 2층 스피노자실. 3층에서는 길진숙님의 <삼국사기, 역사를 배반하는 역사>와 박장금님의 <다르게 살고 싶다> 출판기념회 행사가 있었습니다.

모임 인원 : 8

세미나 범위 : 160~314

주요 화제

1. 대칸의 궁중 연회 장면

부부동반인 듯 보이는데 그럼 마르코 폴로에게도 아내가 있었던 걸까. 15세 때 원에 들어와서 10년 이상을 거주했다면 결혼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동방견문록> 어디에도 아내에 대한 언급이 없다. 마르코 폴로들이라고 의심되는 부분이 여기서도 보인다. 연회 장면 묘사 중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궁전의 각 문, 혹은 대칸에게 가는 곳은 어디든 두 명의 호위병이 손에 몽둥이를 들고 서 있다가 문을 드나드는 사람이 문지방을 밟지 않도록 단속하는 장면이다. 만약 누군가 문지방을 밟으면 호위병은 즉시 그의 옷을 벗긴 다음 돈을 내고 다시 사도록 하거나, 돈을 내지 않으면 대신 매를 맞고 가져가야 한다. 이방인 손님이 이런 풍속을 모른다면 미리 사람을 파견하여 알려주어 예방한다. 문지방 밟는 것을 매우 불길한 징조로 여겼기 때문이라는데 그럼 우리에게도 있었던 문지방 밟지 마라풍습의 뿌리가 이때부터였나. 때밀이 목욕탕이 3천개가 있었다는 기록과 연결지어 고려 후기 유행했다는 몽골풍의 역사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였다.

2. 대칸의 생일 장면

1215828일은 대칸 쿠빌라이의 생일이다. 대칸은 화려한 황금 옷을 입고 12천명에 달하는 귀족과 무관 모두 같은 색, 같은 양식의 옷을 대칸으로부터 선물을 받는데 일년 중 열 세 번의 기념일마다 대칸이 특별의상을 바꾸면 그에 맞춰 신하들도 같은 의복(물론 재질은 대칸보다 낮은 수준임)을 입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비용의 놀라움은 물론이거니와 신분에 상관없이 같은 유니폼을 입었다는 점이 화제에 올랐다. 관복의 색깔로 직급을 표시하던 중국 전통에 비추어 보거나 신분 서열이 분명한 봉건 사회에서 신분의 차이를 드러내는 도구로 의복이 쓰였음을 생각해 볼 때 이 장면은 매우 특이하다. 어쩌면 <몽골비사> 기록 중 칭기스칸이 복식이나 장신구, 머리모양이 병사와 다름이 없었다는 점과 정복전쟁 당시 병사들이 보여주었던 강한 결속력의 밑바탕에는 전리품 분배의 공정성도 있다는 점 등과 같은 맥락에서 내려온 전통이 아니였을까. 또는 유니폼이 갖는 조직의 결속력과 자긍심의 고취를 고려한다면 특별한 의례 행사에는 오히려 당연시되던 일로 볼 수도 있다. 같은 색의 의복과 허리띠, 가죽신을 갖추었으나 화려한 자수와 고급 옷감으로 존재의 우월성은 표시되었을 것이다.

3. 대칸의 사냥

사냥은 오락이자 군사훈련이다. 대칸은 12월에서 2월까지 3개월간 사냥을 즐겼는데 바얀과 밍간 두 신하가 각각 1만명의 군사와 5천마리의 사냥개를 데리고 사냥에 동참했다. 3월 이후에는 동북쪽 바닷가로 이동하여 매사냥을 즐기는데 매잡이만 1만명이다. 이때 사용한 매가 해동청’, 송골매다. 고려에서는 응방을 설치하여 원나라 조공품으로 보낼 매를 잡았다고 하였으니 바로 그 매로구나. 매의 다리엔 은으로 된 꼬리표를 달아 주인을 찾을 수 있게 했다는 대목에서 시치미 떼다를 떠올릴 수 있었다. 사냥 장면 중 불란가치란 직업이 흥미로웠다. 잃어버린 물건을 보관하는 사람이다. 일종의 유실물센터 직원인 셈인데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높은 지대에 깃발을 세워 놓았다고 한다.

4. 대칸이 발행한 지폐

황실 조폐창에서 발행한 지폐를 마르코 폴로는 연금술사의 비밀이라 극찬한다. 뽕나무 껍질을 벗기는 것부터 시작해 최종적으로 황제의 어인을 찍는 것으로 완성이 되는 대칸의 지폐는 금은 등 실물화폐를 밀어내고 대칸의 나라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법정화폐로 자리잡는다. 지폐는 이전부터 있어 왔으나 상공업의 발달과 물류 유통의 확대, 교역량의 증가 등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로 성장하면서 매우 유목적인 발상으로 편리성과 휴대성이 강조된 지폐가 통용된다. 상인 출신인 마르코 폴로에게도 지폐 사용은 놀라운 일이였지만 오늘의 세미나에서 가장 열띤 화제 또한 원의 지폐였다. 논의 핵심은 원의 지폐는 금본위제에 기초했는가 아니면 현대와 같은 신용화폐였는가. 폴로는 일 년에 여러 차례 수많은 낙타상인들이 비단을 비롯한 각종 물건을 싣고 와서 대칸에게 보내면 대칸은 열두 명의 관리를 불러 물품 가격을 매기도록 하고 매겨진 가격에 합리적인 이윤을 더해 물건값을 지폐로 지불하게 했다. 상인들은 그 지폐로 시장에 가서 합당한 다른 상품을 사간다. 만일 금은으로 술잔이나 허리띠 등의 물건을 만들려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지폐를 조폐창에 가져가서 금은으로 바꾸면 된다. 대칸의 모든 군대는 이 지폐로 군향미를 받는다라고 기록했다. 두 페이지 분량의 짧은 기록이라 해석에 따라 금본위제로 볼 수도 있고, 신용화폐로 보여지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좀 더 찾아봐야 한다는 필요성을 공유하게 되었고 논의 과정을 통해 화폐의 역사성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식의 확장! 집단 지성의 힘! 책을 읽고 함께 나눔의 가치! 뭐라 부르던지 쿠빌라이의 지폐가 현재 다시 살아나 그 시대를 보게 하는 느낌이였다.

5. 전국을 이어주는 역참제도

대원판 익스프레스, 원의 역참 제도는 놀랍기 그지없다. 그래서 항상 화제가 된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마르코 폴로의 눈을 통해 쿠빌라이 당대의 역참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세계 최초의 교통 통신망이자 군사 정보망이였던 원의 역참에서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였나, 바로 방울을 단 달리는 역졸의 모습이다. 40~50km마다 역참이 있고 역참 사이에는 5km마다 40가구가 사는 작은 촌락이 있는데 역졸은 이 마을에 살면서 우편물을 전달한다. , 보통은 방울 소리를 듣고 준비하였다가 파발꾼이 도착하면 우편물을 받아 즉시 출발하여 5km를 달리면 된다. 이렇게 하면 아무리 먼 곳의 소식도 이틀이면 대칸의 귀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모든 역졸은 세금이 면제될 뿐만 아니라 대칸으로부터 쌀을 받았다. 반란 등 위급한 사건이 터지면 전문 파발꾼이 나선다. 그들은 40km마다 말을 갈아타면서 논스톱으로 달려야 한다. 425km를 단번에 완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대한 임무를 맡은 만큼 우대받았다. 역마는 400필 정도로 인근 마을에서 공급해 줘야 하는데 대신 세금을 면제받는다. 역졸이 달리는 길은 가로수가 심어져 있었다고 하니 상상해 보라. 바람에 산들거리는 가로수 길 아래로 수레와 낙타에 잔뜩 짐을 싣고 천천히 걸어가는 이국적이나 낯설지 않은 모습의 상단과 스치듯 바삐 달려가는 파발꾼의 모습을. 모든 길은 쿠빌라이에게로 향해 있었다.

6. 티베트

마르코 폴로는 이 곳 사람들의 특이한 결혼 풍습을 소개하고 있다. 이 곳 남자들은 처녀를 아내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수많은 남자와 육체관계를 맺은 여자를 좋아한다. 심지어는 정부가 한 명도 없는 여자는 여자로서 가치가 없다고 믿는다. 그 이유를 남녀의 성관계를 신이 주신 기쁨이라고 믿는 종교적 관념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성의 정조 관념이 중요한 가치였던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풍습이지만 유럽의 중세에도 봉건영주에게 초야권이 있었던 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한 설명 중 여성이 남편에게 보이는 애증의 양가감정 등이 화제에 올랐고 지난 시간 카불지방의 손님맞이 풍습과 유사한 카인두 지역의 풍습이 회상되면서 오늘날의 여성이 과연 과거의 여성에 비해 해방(?)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라는 다양한 의견 등이 쏟아져 나왔다.

7. 만지라 불리던 강남지방, 남송의 도시들

마르코 폴로가 방문한 이 도시들의 기록에는 공통적 문구가 있다.

주민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죽은 자는 화장하며, 대칸의 화폐를 사용한다. 자원이 풍부하여 생활이 넉넉하고 상공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13세기 유럽의 중세시대, 15세까지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 가문에서 나고 자란 기독교인 마르코 폴로의 눈으로 본 세계에 대한 기록은 마르코 폴로 자신을 비춰주고 있다. 그가 말한 우상 숭배자들은 불교도인으로 보인다. 종교를 객관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우상 숭배라는 기독교적 잣대를 사용하여 표현한 점이 눈에 띤다. 유럽에 비해 여러 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대원제국의 여행자였기에 더 이상 오만한 종교적 편견을 보이는 기록은 없었지만 이따금 눈에 띄는 기록에서 후대로 이어지는 기독교 중심 사관에서 비롯된 종교 분쟁의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 서둘러 마무리를 지었지만 이 부분은 후일 다시 화제로 올려야 할 생각거리이다.

8. 천상의 도시 킨사이 (지금의 항저우)

마르코 폴로는 항주를 웅장함과 화려함에서 세계 어떤 도시들보다 빼어나다고 극찬했다. 12천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운하의 도시 항주, 열 개가 넘는 광장과 시장에서는 전 세계로부터 온 온갖 물건과 모든 종류의 고기, 채소, 과일, 생필품을 파는 상점, 때밀이가 고용되어 있는 냉온 목욕탕 뿐 만 아니라 기녀, 의사, 점쟁이, 공무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대다수 주민들은 비단옷을 입고 있으며 12개의 수공업 조합이 있고 아름답게 건축된 집에서 산다. 게다가 그들은 온화하고 예의바르고 서로 돕고 화목하다. 여러 지면을 할애하면서 항주 사랑을 표현했던 마르코 폴로 덕분에 우리들도 잠시나마 항주로 돌아가 알록달록한 도형으로 치장한 유람선을 타고 호숫가의 멋진 풍경을 감상해 보기도 하고 조약돌이 깔린 길을 마차를 타고 유락원으로 가는 상상을 해보았다.

9. 기타

<동방견문록>에서 말하는 타타르는? 나이만, 케레이트, 메르키트, 타타르, 몽골 5부족이 몽골제국으로 통합되었는데 인종이나 부족을 세세히 구분 못하는 유럽에서는 몽골족 전체를 타타르라고 부른 듯.

<동방견문록>에서 말하는 카타이(cathy)와 만지는 어디? 페르시아어 키타이에서 유래된 것으로 베이징 일대 화북 지방을 통치하던 요(거란)을 부르던 말이다. 마르코 폴로는 예전 요나라 영역을 카타이라고 부른 듯. 홍콩민간항공사 cathy pacificcathy가 카타이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만지는 남만땅이란 뜻이며 장강 하류 지역, 강남 일대를 의미합니다.

중국에서 아버지의 직업을 세습하던 제약이 쿠빌라이칸 때부터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다음 모임 일자 : 2018. 01. 10() 7. 13일은 쉽니다.

독서 범위 : <동방견문록> 315~끝까지

알림 사항 : 117일 모임에서는 잭 웨더포드의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124일 모임에서는 들뢰지와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 중 유목론입니다. 한 주 쉬는 동안 이 난해하기 그지없는 텍스트를 미리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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