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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향] 임꺽정 8권 세미나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남산나비 작성일17-05-16 10:48 조회14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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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8권 <화적편2> 세미나 후기


일시 : 2017년 5월 14일 오후 1시 - 3시

장소 : 남산강학원 2층 <스피노자룸>

참석 : 세미나 참석 5명(지흥숙, 조예진, 구정희, 전성자, 이태희)

      발제 참여 1명(안순영)



  <송악산>

  송악산은 송도의 진산이며 국내의 서악으로 산신 송악대왕이 영검하기로 유명하였다. 이 송악산에는 신당도 많았다. 청석골 꺽정이패 도중에 일부가 송악산 굿구경을 가고 싶어 하는 차에 배두령의 장인 김억석이가 사첫방을 마련했다고 구경나오라는 기별을 했다. 청석골 도중의 사내 여편네 열 사람이 단오 전날 송도로 나왔다. 여편네들은 단오굿을 구경하고 그네를 뛰기를 원했다. 대왕 목상, 대왕부인 목상을 먼저 그네뛰게 하고, 대왕대비 몸받아온 상궁마마 일행이 먼저 뛰고, 청석골 사내들의 왈패짓으로 청석골 부인네들이 다음으로 뛰게 되었다. 백손 어머니(운총이)가 먼저 뛰고, 서림이 아내와 곽능통이 아내와 배돌석이 아내가 잇대어 뛰고, 황천왕동이의 아내가 그네를 뛰는데 여러 사람들의 눈이 모두 그네판으로 쏠리게 되었다.


“선녀가 하강하지 않았나?”

“그네터가 홀제 환한 것 같애.”

“고 아주먼네 한입에 꼴딱 집어삼켰으면 좋겠다.”

  (이런 질펀한 농담이 불길한 사태를 예감케 한다.)


  굿구경, 그네뛰기, 매로바위 구경도 끝나고 사내들이 술 마시러 간 사이, 송도 도사의 아들이 낀 왈자패가 황천왕동이 아내를 잡아갔다. 왈자패들이 황천왕동이 아내를 겁탈하려는 순간 김억석이 아들로부터 말을 전해들은 배돌석이가 쫓아와서 돌팔매로 왈자패들을 제압하는 중에 황천왕동이도 김억석의 환도를 들고 쫓아왔다. 결국 황천왕동이의 칼에 송도 도사의 아들이 죽게 되었다. 꺽정이패가 서둘러 청석골로 돌아가려 하고, 아들을 잃은 송도 도사가 원수를 갚겠다고 나섰다. 군관이 몰려오자 서림이는 꾀를 내어 상궁이 거처하는 곳으로 일행을 끌고 갔다. 서림의 꾀는 상궁을 볼모로 잡고 군관의 접근을 지연시키며 그 사이에 청석골 꺽정이에게 지원을 요청하려는 것이다. 청석골로 지원 요청을 하러 가기로 한 황천왕동이가 상궁이 머무는 무당집을 빠져나가기가 어렵게 되자 무예별감을 붙잡아 두고 그 옷을 벗겨 입고는 무예별감으로 변장하여 나갔다. 꺽정이가 교구꾼과 어려 두령들을 이끌고 왔다. 꺽정이의 호통 한마디에 군졸들이 다 달아나고 꺽정이패들이 무사히 청석골로 돌아왔다.

 (<송악산> 장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왜 쓸데없는 일거리를 만드나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단오굿, 대왕 목상 그네뛰기 등의 풍습에 대한 묘사를 읽을 수 있었다. 운총이는 그네를 굳이 뛰려는 속셈이 있었다. 송악대왕의 영검이 있다는 속신에 기대어 ‘꺽정이의 계집질을 끊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순영샘은 발제문에서 그네를 뛰며 살풀이 한풀이 하는 것도 여인들 우울증 해소법의 하나로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외출한 운총이가 동생 황천왕동이와 어울리면서 어릴 적 백두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흥숙샘은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했다. 흥숙샘에게 꺽정패들의 왈패짓은 딱 질색이고, 곱고 아련한 이야기라야 딱 어울린다.^^)


  <소굴>

  청석골 적당이 송도부 부근에서 살인한 일이 그간 종종 있었으나 보복이 두려운 백성들이 고발하지 못하고, 혹 관리가 들었어도 모른 체하고 덮어두어 큰 탈이 없었다. 그런데, 송악산 큰굿날 벌어진 살인은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니었다. 송도 유수가 상감께 장계를 올렸고, 조정에서는 토포사를 내 보내 청석골 적당을 토벌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청석골에서는 토포사가 날 때의 대책을 논의하는 중에 산성을 하나 뺏어서 관군을 막아보자는 방책,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관군을 헛다리질을 하게 하자는 방책 등이 나왔다. 그 중에 소굴을 몇 군데 더 만들어 예비하기로 하고 성천, 양덕, 맹산 평안도에 소굴을 마련하기로 했다.  평안도 소굴 마련에 꺽정이는 박유복이와 배돌석이를 먼저 보냈다. 배돌석이가 봉산읍에 숙소를 대고 머물 때 그를 알아본 한 수교가 봉산군수에게 일렀다. 수교와 관졸이 들이닥쳤을 때, 배돌이는 마침 “잡히지 않을 운수가 뻗쳐서” 뒷간에 나와 있었다. 배돌석이가 관군을 피해 도망쳤던 자기 졸개 하나는 구하여 청석골로 돌아왔다. 꺽정이는 두령을 버리고 도망쳤던 그 졸개를 물고를 냈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도 이순신이 도망쳤던 군졸이 잡혀오면, 지엄한 군령을 지키기 위해 “베어라.” 한마디 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예진샘은 꺽정이가 원씨 집에 머물 때, 그 집 할멈이 노밤이를 ‘심미실’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장면에 주목했다. 심술망나니에 미치광이에 실본이라는 그 노밤이를 왜 꺽정이는 버리지 내치지 못하는 것일까? 8권 후반부에서도 노밤이가 온갖 해를 끼쳤으면서도 그 장광설에 꺽정이는 또 용서하고 만다.)  

 

 꺽정이패가 봉산군수 박응천을 처치할 궁리를 했다. 먼저 서림이가 금부도사로 위장하여 봉산군수를 잡으려 하였다 실패하고는 한온이를 통해 조정에 말을 넣어 봉산군수의 벼슬을 떨어지게 하였다. 조관행세를 하고 봉산읍에 들어온 임꺽정을 봉산군수가 몰라서 못 잡은 책임을 묻도록 한 것이다. 청석골패 안식구들을 먼저 광복산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서림이의 의견을 좇아 안식구들을 모두 광복산으로 옮긴 후 심심한 것을 견디지 못하여” 꺽정이가 단신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겉으로는 남소문 안 한첨지의 문병을 볼일로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서울 살림하는 여편네들을 와서 볼 생각이 긴하였던 것”이다. 꺽정이는 서울을 여편네들 집을 전전하는 중에 김씨의 비부쟁이 노릇을 하던 노밤이를 기집 속량과 함께 내 보냈다.

  꺽정이가 서울 온 뒤 식사는 대개 원씨에게서 하고, 잠은 김씨에게서 많이 자고, (놀기는) 간간이 친한 기생 장찻골 소흥이를 찾아다녔다. 여기서 소흥이의 명대사 한마디-


“사내의 정이란 들물(밀물)과 같아서 여러 갈래로 흐르지만 여편네 정은 폭포같이 외곬로 쏟칩니다.”

(당연히 정희샘도 이 문장을 뽑아 발제문에 올렸다. 특히 정희샘은 이번 발제 부분에서 꺽정이와 소흥이의 재회, 꺽정이의 ‘커밍아웃’ 등에 주목했다. 꺽정이가 세 여자들에게 털어놓지도 않은 자기의 본색을 소흥이에게 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백정출신으로서의 자신의 심정을 소흥이에게만 시시콜콜 드러내는 것은, 정희샘의 말로는 소흥이가 <업계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란다. 하하. 빵! 터짐^^)


  소흥이가 양반집 술자리에서 임꺽정에 대해 들은 얘기를 전하자 꺽정은 임선달로 칭해온 자신이 바로 꺽정이임을 밝혔다. 소흥이는 꺽정이를 따라나서겠다 한다. 꺽정이는 먼저 청석골로 와서 신임 봉산군수 윤지숙에게 분풀이할 작당을 한다. 신임군수의 도임행차를 습격하기로 한 것. 배두령은 임진 나루터에서 달아나는 윤지숙을 쫓아가 돌팔매로 혼뜨검을 내주기도 했다. 그 사이 오두령의 부인 상사가 났고 황천왕동이가 광복산에서 와서 알렸다. 오가 부인 하관시 오가가 같이 묻어달라고 난리를 떨기도 했다. 해서 오두령을 열녀 아니 ‘열남’으로 부르기도 했다. 꺽정이가 감사의 사촌 유도사 행세를 하며, 부사의 술대접과 받는 등 수작을 하다가, 급기야 봉산군수의 말을 빌려 타고는 봉산을 떠나며 자신이 임꺽정이라고 밝혔다.


“이놈들아, 이 눈깔 없는 놈들아, 나를 유도산 줄루 아느냐? 이놈들아, 내가 임꺽정이다. 임꺽정이야!”


  꺽정이는 신임 봉산 군수 윤지숙의 말을 타고 청석골로 돌아왔다. 꺽정이가 하루에도 몇번씩 마누라 산소에 올라간다는 오두령에게 첩을 얻어주겠다고 하자, 오가는 “내 몸은 홀애비라두 내 맘은 아직두 핫애빕니다” 라고 말했다.(핫애비=유부남)

  남소문안 한첨지가 세상을 떴다는 연락이 와서 꺽정이가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서울의 안 식구들과 소흥이를 데려오기로 작정했다. 장례식 일 중에 흥천사가 소개되기도 하였는데 흥천사는 태조대왕 신덕왕후 강씨의 혼령을 천도하려고 이룩한 절이라 하며, 요란한 불사 풍습이 언급된다.

  한첨지의 장례식 참석차 함께 왔던 황천왕동이와 이봉학이 광복산으로 떠나기 전, 꺽정이는 남산에 올라 을사년 국상 나던 때의 이야기를 한다. 윤원로가 김륜을 데리고 인종대왕 방자하던 것을 꺽정이가 제지시켰던 일이 그것이다. 이 부분에서 남산 잠두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잠두 = 누에의 머리(남산 북서쪽 가파른 봉우리(?) 언덕(?)을 말함)


 “잠두에 올라 십만장안을 굽어봐야 그 세상이 어디 우리 세상인가. 올라갈 재미없네. 여기서 바루 소흥이에게루 내려가서 술이나 얻어 먹세.”

(꺽정이가 윤원로의 방자를 제지한 일을 세상이 몰랐다고 하면 추어올리자 꺽정이가 응수하는 말이다. 꺽정이의 안목과 관심사를 잘 보여주는 듯하다.)


  꺽정이가 황두령, 이두령을 데리고 소흥이네 집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술을 마시는 사이, 노밤이는 청석골 졸개 둘을 데리고 서울 구경을 시켜주고 술을 마시러 갔다. “북촌은 떡 남촌은 술” 노밤이 일행이 남소문 부근에서 술을 마시다가 돈이 없는 도망치려는데 마침 포교에게 걸려 도망치지 못하고, 한 졸개를 볼모로 잡힌 채 술값을 변통하러 나섰다. 노밤이는 박씨에게 가서 꺽정이의 심부름이라고 거짓말을 하여 상목 한필을 얻어 술값을 셈했다. 그러나 중간에 일부 술값을 포교가 빼돌리는 바람에 노밤이와 졸개들은 결국 포청으로 잡혀 갔다. 포청에서 심문 끝에 노밤이가 모든 것을 다 불었다. 정보를 얻은 포도부장이 포교들과 함께 꺽정이 머무는 소흥이네 집을 기습했다. 꺽정이 일행이, 사다리 활 등을 이용하여 포졸들을 물리치고 ‘오간수’(일종의 하수구)를 통해 서울을 빠져 나가려고 할 때, 소흥이가 따라왔다. 청석골로 향하던 일행이 장수원에 머물 때, 소흥이 가지고온 패물 중 은가락지를 팔아 길양식과 삯마를 마련했다.

  꺽정이를 놓치자 좌변포도대장 남치근이 노밤이와 졸개들을 족쳤다. 노밤이가 또 다 불어서 꺽정의 안식구들, 김씨와 원씨 박씨가 모두 잡혀왔다. 남치근도 탄핵을 당해 벼슬이 떨어졌으나, 붙잡혀 온 꺽정이 첩 중에 원판서(원계검)의 딸이 있다는 사실을 원판서에게 전했다. 원계검은 ‘출가 전 작은 딸이 하룻밤에 죽었다고 헛장사 지낸 일’과, 남치근에서 들은 이야기를 이량에게 전했다. 이량은 남치근의 후임 포도대장에 의해 원씨의 일이 불거지지 않도록 임금을 움직여 꺽정이의 첩들을 모두 전옥으로 압송시켰다. 그 사이 노밤이는 풀려날 계책으로 역적고변을 한다 하고, ‘꺽정이와 남소문안패(한온이)가 역당’이라 했다. 그리고는 꺽정이 어미부터 잡으면 꺽정이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꺽정이네 사정을 아는 한 나장이 꺽정이 어미가 죽은 지 오래라 하자, 노밤이는 꺽정이의 양어미가 살아 있다고 둘러댔다. 결국 노밤이가 꺽정이 양어미를 잡는다고 나졸들과 함께 탑고개로 접어들었다가, 곽오주가 쇠도리깨 들고 달려드는 통에 나졸들이 놀라 다 달아나 노밤이만 구출되었다. 한온이도 몇날 며칠 짐을 꾸려 청석골로 들어왔다.

  꺽정이는 세 여편네를 빼내기 위해 전옥을 파옥하려고 했다. 전옥 파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흥천사의 중을 위협하여 상목 열 필을 강탈하기도 했고, 파옥 인원을 확보하기 위해 혜음령패들을 모으기도 했다. 그런데 혜음령패의 두목 정상갑이 전옥 파옥은 못한다고 대들었다가 꺽정이의 발길질에 목숨이 끊어졌다. 정상갑의 죽음에 최판돌이도 달려들었다가 크게 다쳤다. 결국 꺽정이는 혜음령패들을 돌려보냈다.

  다음날 황천왕동이가 와서 백손이 이천읍에 갇혔다는 소식을 전했다. 백손이는 명녹이를 따라 장구경을 나섰다가 엿장수와의 시비 끝에 붙잡혔다는 것이다. 꺽정이가 전옥 파옥을 하려고 동행했던 일행들을 전부 데리고 이천으로 와서 백손이를 빼내어 달아났다. 관군이 길을 막았다. 꺽정이가 관군의 화살을 맞고도 검술로 관군들을 물리치고 광복산으로 돌아왔다.

  소흥이가 구일이라고 국화전을 부쳤다 한다. 꺽정이가 국화주에 주안상을 차리게 했다. “주안상이 안에서 나오는데 소흥이가 주장하여 차리어서 음식이 안목이 있었다.” 꺽정이 일행은 다시 광복산을 나와 청석골로 돌아왔다. 한온이의 짐도 청석골로 들어왔다. 그 사이 전옥에 갇힌 원씨는 자결했고, 박씨 김씨는 관비가 되자 꺽정이는 전옥 파옥을 파의했다. 노밤이의 장광설을 들은 꺽정이는 노밤이를 용서했다. 한온이는 특별히 대접하여 두령을 시켰고, 오가를 유복이네도 보낸 뒤 오가가 쓰던 집을 한온이에게 내주었다. 혜음령에 갔던 길막봉이는 정상갑이와 최판돌이의 장례를 치르고는 새 괴수를 뽑아 청석골로 데리고 왔다. 꺽정이는 새 과수에게 상목 수십 필을 주어서 정상갑이와 최판돌이의 유족들을 규휼하라 하였다.

  평안도 역사를 맡아 떠났던 박유복이도 역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이로써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려고 만든 소굴이 사오 삭 만에 양덕, 맹산, 성천 3군데에 마련되었다. 또 두령들의 맡은 소임도 정리했다. 한온이는 도중 재산관리, 김산이는 미곡 포곡 출납, 배돌석이는 사산 총찰, 황천왕동이는 각항 전령, 좌우 우군 만들어 이봉학이와 박유복이에게 각각 좌우군의 정두령을 시켰다. 길막봉이와 곽오주는 좌우군의 부두령을 시켰다. 서림이는 계속 모사일을 맡았고, 오가에게는 꺽정이 출타시 대장 대리할 권한을 주었다.

(이로써 8권 화적편 <송악산>과 <소굴> 장이 마무리되었다.)

 

부록 : <탈근대의 독법으로 읽는 <임꺽정>>

 전성자 샘이 지난해 타계하신 신영복 선생님의 책 <변방을 찾아서>에 실린 글을 복사해 와서 함께 읽었다. 이 글을 요약해 본다.


-(충북 괴산에 있는) 벽초 홍명희 문학비가 우여곡절 끝에 비문의 내용이 고쳐졌다.(비문의 글씨를 신영복 교수가 쓴 것이다.) 북한에서 부수상까지 지낸 인물이라서 보훈단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고 그의 생각도 선친의 이름을 따 ‘홍범식 고가’로 불리고 있다.


-벽초의 정치적 정체성과 달리 소설 <임꺽정>을 넘어서는 대하소설이 없다. 도종환 시인도 <임꺽정>이 반상(班常)의 두 세계를 넘나드는 벽초만의 스케일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자체가 풍부한 우리말 보고하는 점을 지적했다.


-<임꺽정>은 미완의 소설로 최초의 대하소설이지만, 당시의 궁정 비사를 중심으로 하던 당시의 역사소설과 그 판을 달리했다. 더구나 그 주인공이 하층민이라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임꺽정>은 단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는 천민을 소설의 중앙에 앉혀 놓은 작품이다. 그것만으로도 혁명적이어서 계급적 저항소설로 읽힌다. 이는 근대적 문학평론의 오래된 준거틀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급의식은 이러저러한 충돌지점에서 짧게 돌출할 뿐 사회 변혁의식으로 발전하거나 일관되고 있지는 않다.


-<임꺽정>의 탁월함은 그러한 계급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구속하는 일체의 사회적 문맥 자체를 시원하게 뛰어넘는 곳에 있다. 너무나 인간적인 삶, 그리고 그러한 삶에 담긴 자유의지와 우정이 그것이다. 우정을 음모(陰謀)라고 했던 에피쿠로스의 말이 새삼 와 닿는다. 온몸으로 부딪치는 인간관계와 그런 인관관계가 엮어 내는 삶의 진정성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 <임꺽정>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다.


-<임꺽정>은 봉건적 관념을 뛰어넘고 있을 뿐 아니라 근대 문맥 역시 시원하게 뛰어넘고 있다. 한마디로 임꺽정과 그의 동무들은 ‘추방’당한 자가 아니라 ‘탈주’하는 자들이다. 변방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새로운 삶의 전형이 바로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임꺽정>에는 주의할 함정이 없지 않다. 꺽정이는 결코 강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임꺽정은 비범한 무예와 담력을 지닌 ‘강자’의 초상으로 우리들에게 남아 있다. 더구나 작품이 미완으로 끝나기 때문에 임꺽정은 계속 살아 있다. 그러나 그는 실상 약자이다. 연약한 백정의 자식이었을 뿐이다. 실제의 임꺽정 역시 관군의 토벌에 쫓기다 무수한 화살을 맞고 체포되어 처형당한 비극의 주인공이다. 그곳이 청석골이라는 험처라고 하더라도 그곳은 어쨌든 평지가 아닌 산골짝이고, 변방이고, 사회적 약자들의 피신처이다.


-물론 임꺽정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가 강자의 면모로 읽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이미지를 입히는 주류 이데올로기도 그렇지만 우리는 사회적 약자가 최소한의 삶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대응 방식에 관해서도 무심하지 않아야 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에 결코 약하게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적 약자는 문신을 하거나 성깔 있는 눈빛을 만든다. 위악을 연출한다. 생각하면, 사회적 약자는 위악을 주 무기로 하고, 반면에 사회적 강자는 위선을 주 무기로 한다. 극적 대조를 보인다. 시위 현장의 소란과 법정의 정숙이 그것이기도 하다.


-나는 <임꺽정>에서 나의 겨울 감방을 추억한다. 일곱 두령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으며 춥고 긴 겨울밤 눈물겹게 해후했던 감방 동료들의 기막힌 인생 유전을 추억하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교도소는 ‘산’이라고 대답한다. 쫓기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산은 변방의 원형이다. 그러나 산에는 꽃이 있다. 산유화가 그것이다. 그렇다. 산은 꽃이 있는 변방이며, 변방은 기존의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와 창조의 공간이기도 하다.


(요약하려고 했는데 신영복 선생님의 문장이 워낙 아주 압축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글이라 거의 필사 수준이 되었다. <임꺽정>을 읽는 또 다른 독법이다. 문득 <임꺽정> 읽기가 풍성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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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9권 세미나 안내

일시 : 2017. 5. 21. 오후 1시-3시

장소 : 남산강학원 2충 스피노자룸


(차기 토론작 예고 : <임꺽정> 끝나면, 황석영의 <장길산>(창비, 12권)을 읽을 계획입니다. 대략 6월 중순에 시작할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일정은 차후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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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님의 댓글

마가렛 작성일

여행전 급한 발제를 위해 성글게 읽은 많은 부분이 채워지내요.
신영복선생님의 글 요약까지 해주신 태희쌤의 세심한 배려 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