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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유목제국사>-3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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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범 작성일17-05-09 13:15 조회19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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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칭기스칸과 그 후예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이들은 정주문명에 동화되면서 자신의 유목민적인 기질을 잃어갔습니다. 15세기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유목 국가들이 무너지고 말았죠. 이때 티무르라는 존재가 등장합니다. 트란스옥시아나(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영역)에서 일어난 티무르는 몽골족이 아니라 투르크인이었습니다. 티무르가 등장할 당시 주변에 그를 상대할만한 힘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순식간에 인도, 이란, 오스만을 공격하면 티무르 제국을 세웠죠. 하지만 침략의 성격은 기존 칭기스탄의 후예들과는 좀 달랐습니다. 이전 유목민들의 공격은 말 그대로 정주민에 대한 침략이었습니다. 르네 그루쎄는 유목민들의 전쟁 방식을 먹이를 쫓아가 사냥하는 늑대 무리로 비유했었습니다하지만 티무르는 달랐습니다. 그는 성전의 이름으로 침략했습니다. 그는 이슬람을 믿었기 때문에 이도교들에 대한 성전을 선포하면서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그 구분은 단순히 이슬람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이슬람에 더 투철하느냐 아니냐였죠. 광신적인 무슬림이었던 티무르는 이슬람 국가들마저 공격합니다. 이걸 보면서 티무르에겐 침략이 먼저고 그다음에 이유를 찾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ㅎㅎ

 아무튼 티무르의 잔혹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동부 이란을 공격할 때는 젖먹이 어린아이까지 학살을 했습니다. 또 여러 도시를 파괴하여 그 지역 자체를 아예 사막화시켜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루쎄는 이런 티무르의 잔혹성은 몽골의 야만성과 무슬림의 광신성이 결합되었기 때문이라고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티무르 사후, 티무르 제국은 급속도로 약화되고 결국 멸망하고 맙니다.

 이후에도 칭기스칸들의 후예들은 중앙 아시아에서 계속해서 유목국가를 세우며 정주국가들과 대립했습니다. 흥미있던 것은 오랫동안 정주하면서 유목민적인 기질을 잃어버린 유목민족들이 국가를 잃고 초원으로 내쫓기자, 다시 유목적인 활기차고 강력한 힘을 되찾아서 다시 정주민을 공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끝난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덧 다시 살아나서 정주민을 괴롭히는 이런 유목민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몸 안에는 여전히 유목적인 기질이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주해 있으면서도 조건만 맞는다면야 언제든 유목할 수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튼 이러한 유목국가들의 위협에 중국, 러시아, 오스만 투르크 같은 정주국가들은 촉각을 내세우면서 그에 대한 경계를 멈추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원나라가 망하고 몽골 제국도 붕괴된 이후에 유목민이 더 이상 정주국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제국을 만들지 못했을 뿐이지 유목민들은 여전히 정주국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언제까지? 근대화 전까지! 요즘 박지원의 열하일기을 읽고 있는데요. 거기서 박지원이 몽골 기병 10만 명이 연경(오늘날 북경)으로 쳐들어왔다라는 농담을 던지자 듣고 있던 사람이 깜짝 놀라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전에는 그냥 웃으며 건너간 대목인데, 지금 읽으니 또 달랐습니다. 그때까지도 몽골 유목민은 일개 조선의 선비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던 거죠.

 이처럼 유목민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은 상당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점이 북경이라는 도시입니다. 원나라가 오기 전까지 북경은 연경이라고 불렀습니다-춘추전국 시대 연나라의 수도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 때도 이렇게 불렀죠.-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이 원나라의 수도를 북경으로 정하면서 본격적으로 북경이 발전하기 시작했죠. 또한 또 다른 유목민이 세운 청나라의 수도 또한 북경이었습니다. 유목민족에 의해 만들어진 북경. 이렇게 생각하니 또 다른 시점으로 북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금 생각이 났는데요. 아마 유목민족이 없었으면 열하일기또한 있지 않았을 겁니다. 유목민족들은 한 곳에 거주하지 않고 계절에 따라 거주하는 곳이 달라지는데요. 만주족이 세운 만주족은 유목민족답게 황제들은 여름궁전을 만들어서 여름을 열하에서 종종 지냈습니다. 마침 박지원이 속한 사절단이 연경으로 갔을 때 건륭제는 더위를 피해 열하에 있었죠! 그래서 열하로 가서 나온 여행기가 바로 열하일기였으니~ 유목민들의 사는 스타일이 아니었으면 열하일기가 아니라 연경일기에 불과하지 않았을까요?ㅎㅎ


 네 그럼 내일 모레 수요일 날에 뵙겠습니다. 

 대통령 선거도 끝났겠다, 양꼬치로 회식을 할 예정이니 모두들 빠지지 말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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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문리스님의 댓글

문리스 작성일

<열하일기>와 양꼬치로 유혹하는 '유목세미나'로군!! ^^ 뭐든!! 오늘은 날도 참 좋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