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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과 제국> 4주차 세미나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오윤 작성일17-04-02 20:59 조회37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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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29 유목과 제국 4주차 세미나 후기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르네 그루쎄 지음)> 서론과 11(초기의 초원 역사: 스키타이와 훈)을 함께 읽었습니다. 책을 펼치면서 기대했던 것은 유목민들의 교환 양식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초원의 풍경이었습니다. 앞서 읽은 책 <제국의 구조(가라타니 고진 지음)> 탓이겠지요. 세계=제국은 교환양식 B(지배와 복종)에 의해 형성되지만 그 안에 호수성의 원리를 담고 있다고 고진은 말합니다. 유라시아의 수많은 유목민들, 이들의 제국사라면 지배와 복종, 약탈과 재분배를 넘어 분명 여기에는 호수성의 원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듯 싶습니다.

그러나 책을 펼치자마자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습니다. 정주 공간에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이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거친 초원 한 자락에 떨어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모르는 지명과 언어 천지였고, 그들의 삶의 양식에 오금이 시리기도 했습니다. 적의 머리를 댕강 자르는 것을 취미생활처럼 누리고, 사자의 두개골을 컵으로 사용하며, 평생 죽인 사람 숫자만큼 전사의 무덤에 석인을 세우는 유목민의 잔인성을 이해하기에는 나의 삶은 참으로 온순했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진 아저씨가 이야기한 호수성의 원리나 양태를 찾거나 상상하기에는 초원의 생경함에 압도당한 느낌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타쉬켄트, 오르콘, 카라코룸, 쿠차, 카리샤르 등등 수많은 낯선 지명이 나올 때 구글맵을 옆에 끼고 거기가 어디야?”하고 검색해보곤 했는데요. 그러면서 느낀 점 두 가지. 첫째, ‘중국이 정말 조그마한 나라구나! 그러니깐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시간과 공간의 스펙트럼이 매우 좁구나하는 생각. 둘째, 우리의 DNA 어딘가에는 분명 유목민의 흔적이 자리 잡고 있을 수밖에 없겠구나, 그러니깐 광활하고 거침없는 초원의 삶과 기억이 자리 잡고 있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들이 점유했던 시공의 스케일을 감안할 때 이런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었던 거죠).

그러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초원의 광활한 정경들이 만들어낸 습속들, 그 거칠고 광활하고 텅빈 초원의 DNA가 거세된 것일까? 왜 유목민의 DNA는 정주민의 DNA에 동화되거나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일까? 고진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가 읽은 스키타이, 흉노, 돌궐 등은 정주사회로의 이행과정에서 잃어버린 자유를 집단 차원에서 회복하려는 시도, 자유를 지향한 공동의지의 소산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시도의 힘은 초원이 가진 강력한 자연성, 뒤틀림, 구부림, 애매함, 잔인함을 배경으로 합니다. 쉽게 물러서지도, 쉽게 무너지지도 않을 DNA라는 거죠.

그것이 정주민의 DNA에 동화되거나 사라져 변방의 역사’, ‘침묵의 역사로 잊혀진 것은 그들의 DNA가 초원을 넘어선 공간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그런 의문이 세미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번뜩 들었습니다. 비옥한 농경지를 침탈하여 그곳을 자신의 양고 말이 풀을 뜯는 곳으로 만들어 버리고, 한 무리의 늑대들처럼 약탈과 이동을 수세기동안 되풀이할 뿐, 뭐 하나 남기지도 않는 초원의 삶이라는 것은 비축과 교역, 그리고 과거의 계승(사자와의 관계)을 근간으로 하는 정주의 삶을 넘어설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유목의 DNA에서는 앗틸라, 묵특, 탁발도와 같은 시대의 전설은 나올 수 있지만 만리장성, 종교, 사서삼경과 같은 제도와 사상의 축적과 계승은 불가능하고, 적들을 포섭하여 또 다른 적들과 싸우게 만들거나, 중재하게 만드는 리듬감 역시 탄생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유목의 삶을 두텁게 읽다보면 이제껏 정주적 삶을 전제로 한 의 전략들이 다분히 비틀리고 구부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에 정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인식, 무언가를 남기고 축적하고자 하는 삶의 리듬이 자연의 리듬과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지금 내가 인식하는 주체, 타자, 관계에 대한 생각이 정주의 시대, 좀 더 좁게는 세계=자본의 시대에 종속된 착시 현상일 수도 있겠다는 질문은 이 책을 읽고, 세미나를 통해 들어온 도전이었습니다. 유목이 있어야 정주가 가능하고, 유목과 정주 사이에는 오랜 시간 매우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있어왔다는 것, 불교로 표상되는 종교가 자연의 리듬, 이른바 유목민의 삶에 미친 영향 역시 흥미로운 질문거리였습니다. 어쩌면 고진이 말한 교환양식 D, 잊혀진 역사로서 유목사회와 종교/사상이 맞물리고, 정주와 유목이 맞물린 제국에서 만들어지는 호수성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쉽지 않은 낯선 도전이지만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다음 주도 계속됩니다. 다음 주는 273페이지까지입니다.

중세 초기 돌궐, 위구르, 거란, 13세기 투르크인과 이슬람, 6-13세기 러시아의 초원까지. 시공의 방대한 도전. 수요일 저녁에 뵙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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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무영님의 댓글

무영 작성일

정주와 유목사이!
그 사이의 상호작용을 잃어버린, 혹은 포기한 인류의 역사 현장 지금!
유목 세미나가 더욱 흥미로운 이유 같습니다^^
간식도 후기도 아주 좋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