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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세미나 시즌5> 4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앤데 작성일17-03-25 23:15 조회9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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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에는 현민님이 준비해오신 맛있는 떡을 먹으면서

푸코의 주체해석학 3,4번째 강의를 함께 보았는데요~ ^^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에게 권했던 자기배려는 어디까지나 도시국가의 한 요소인 한에서의 자기배려였고

플라톤에 있어 신체적 배려와 정신적 배려는 구분되어 있었지만,

헬레니즘 로마 시대를 거쳐 1,2세기로 오면서 자기배려는 이제 신분과 관계없이 만인에게 항상 부과되는

보편적, 정언적 명령이 되었습니다.


3강에서는 자기배려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이 1,2세기에, 자기배려의 보편화 과정의 한 축인 개인생활 차원에서의

보편화(자기배려의 연대기적 이동)를 보았고

4강에서는 자기배려의 양적인 확장, 즉 자기배려 해야 하는 대상이 만인으로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1,2강에서는 푸코가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건지 저로서는 좀 장황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는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3장부터 이야기 하는 내용들은 그래도 앞 장들보다는 논하는 범위가 확 줄어들어서

다행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더랬지요.. ^^;

내용이 비교적 명확했기 때문에, 이번 세미나 시간에는 기호를 해독하는 느낌이 확실히 덜해서

이해안가는 부분에 대한 질문보다는 각자 책을 읽다가 꽂힌 부분들을 약간 수다떨듯 자유롭게 나누는 분위기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세미나 참여자들이 꽂힌 부분은 '노년'에 관한 부분이었는데요... 자기배려가 청년입문기의 사람들 뿐 아니라

전 계층으로 확장되면서 세네카는 '노년'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지요. 세네카가 말하는 노년은 자기가 자기에게

도달한 상태, 자기배려의 최고 도달지점입니다.


한 회원은 이런 노년이라면 늙는다는 두려움 없이 노년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저도 공감이 됐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턴가 노년이란 마치, 이미 고장났으나 당장 버리기엔 아직 쓰레기차가 도착하지 않아서

폐기가 조금 유예된 채로 집 한 구석에 놓여져있는 고물 기계같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에 반해서

세네카가 말한 이런 노년은 전 인생을 통틀어 가장 핫한 시기겠죠.. 간장, 된장 등 하루라도 더 묵을수록 가치로워지는

노년기라면 늙어가는 것을 지금만큼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요.


또 1,2세기의 자기배려에 담긴 교육적 측면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인생에서의 모든 사건, 불행, 불운, 몰락

등을 품위있게 견뎌낼 수 있는 개인을 만들어내는 의미로서의 교육적 기능을 말한다는 대목에서 저를 비롯해

감탄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 설명이 필요없죠.. 한 분이 공자는 소인은 곤궁한 상태에서 흐트러진다고 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동 서양의 군자와 소인에 대한 깨달음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편 철학적 실천과 의학적 실천의 동일시가 이 시대에 나타나면서 에픽테토스의 학원에도 영혼의 병원, 진료소 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는데요. 저는 왜 정신적 문제가 신체적 문제로 확대되었는지가 궁금했는데, 한 회원분은 그 시대에는

현재 우리가 지식과 신체를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정신과 신체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함께 가져가는 통합적인 앎의

방식이 있었을 거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언젠가 영화를 보면서 중세기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묵독을 하지 않고

늘 낭독하는 방식으로 성서를 읽는 장면을 보고 이런 이야기가 납득이 되더군요. 4강 뒷부분에 나오는 양생술, 가정관리술

등 실질적으로 자기배려하는 실천의 방식들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자기 삶의 방식에 전적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부드러운 스승, 자아를

만나게 해줄 매개자가 필요한지' 질문했는데요. 왜냐면 푸코나 소크라테스나 '타자'없이는 스스로 Stultitia의 혼란 상태에서

빠져나올 건강한 사람이 없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분은 철의 장벽? 철의 방?이 떠오른다고 하시면서

잠들어있는 사람을 끝까지 깨우겠다고 하는 루쉰 이야기를 잠깐 해주셨는데요.

아무리 지혜자들이 '너는 노예상태다. 하루빨리 박차고 나와 자유를 얻으라'고 외쳐도 만약 본인의 처지에 충분히 자족하는

노예가 만약에 세상에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런 이들에게도 자기배려 하라는 정언 명령이 필요한가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누군가가 '한번이라도' 고민스러운 상황을 경험해본다면 절대 그 상태로

완벽히 자족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타자의 도움을 거부할 리가 없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그렇다면 자기배려에 누구보다도

진실되게 더 많이 도달한 사람은 과연 행복하냐는 궁금증도 들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누구보다 자기배려에 도달한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그리 세상과 원만하지 않고 이웃들과 시원하게 소통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 보였고

겉모습은 더욱 고집스럽거나 주변과 불화하거나 이런 저런 크고 작은 댓가(?)를 치르는 것으로 여겨졌거든요.


 그런데 이런 질문은 또다시 '그럼 진정한 행복은 뭔가?'라는 .. 더 근원적인 데로 들어가죠.

 일단 책 전체를 읽을 때까지, 이런 저런 질문들을 기억해두었다가 다시 던져보는 것도 좋겠지요~!

 끝까지 열심히 읽어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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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발제는 현민님입니다.

읽어오실 범위는 5, 6장(p.201~277) 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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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줄자님의 댓글

줄자 작성일

'이상적 노년, 자기 스스로 만드는 노년, 단련시키는 노년'이라는 노년에 관한 새로운 윤리를 정말로 만들고 싶어지더라구요. 그러기 위해 자기 배려가 무엇인지 계속 공부해야 겠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