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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 세미나 시즌 5> 3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潤枝 작성일17-03-21 10:14 조회320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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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코끝 세미나 마지막 시즌에 합류를 했는데요, 코끝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덕분에 매주 수요일마다 아직은 소화하기 어렵지만(!), 즐겁고도 진지하게 푸코를 만나고 있습니다. ^^ 한 주를 달려가다 숨 좀 돌리고 후기를 쓰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일이 다시 세미나 날이네요 ^^;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수양>에 이어서 저희는 지난주부터 <주체의 해석학>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주체의 해석학>은 푸코가 콜레쥬 드 프랑스에서 강의한 내용을 녹취하여 출간한 텍스트인데요, 여기서 푸코는 주체진실이 어떤 형태의 역사 내에서 서로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강의를 진행합니다.

푸코는 출발점으로써 자기 배려' (epimeleia heautou)라는 개념을 취하면서 소크라테스-플라톤 시대의 자기 배려와 자기 인식의 관계를 밝혀나가며 자기 배려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특히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에서 자기배려의 개념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이끌어내는데요, 알키비아데스를 읽어내는 푸코의 독특한 독법과 해석이 놀랍고 신선했습니다.

자기 배려란 기본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배려하고 돌보는 행위인데요, 여기서 푸코는 자기란 무엇인지, ‘배려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소크라테스-플라톤 시대의 자기배려의 맥락과 핵심을 정리해갑니다. 고대 철학 전반과 초기기독교를 관통하기까지 풍부하고 오랜 생명력을 지녔던 자기배려가 자기인식의 그늘에 가려져 사라져버렸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번에 읽었던 <주체의 해석학>에도 설명이 되어있긴 하지만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수양>에 나왔던 설명을 참조하해서 여기에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갈게요.

푸코에 따르면, 고대문화에서 중요했던 자기배려의 테마가 사라진 이유는,

1) 그리스도교 금욕주의에서 자기 배려가 희생의 형태를 취한 역설 (자기 포기)

2) 자기 기술의 대부분이 오늘날 교육과 교습의 테크닉, 의료와 심리학적 테크닉에 통합되고

3) 인간과학이 자기와 자기가 맺는 가장 중요하고 주요한 관계가 본질적으로 인식의 관계이고 또 인식의 관계여야 한다는 전제

4)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할 바가 자신의 숨겨진 현실의 베일을 벗기고 해방시키고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문제는 자기를 석방하거나,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새로운 유형의, 새로운 종류의 자기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리하는 것이라고 푸코가 말했죠.


세미나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 몇 가지 정리해보겠습니다.

- 우선 세미나 중간 중간 텍스트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몇 가지 용어에 대한 정의가 필요했는데요, 근영샘께서 명쾌하게 설명을 해주셨네요.

*주체: 자기가 의지적으로 할 수 있는 행위능력을 가진 존재

*영혼: 우리안의 생명의 힘, 생명력. 동양의 정기신(精氣神)의 신()의 개념과 유사

*진실, 진리: 참된 앎

- 푸코는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주체가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변형을 가하는 탐구, 실천 경험 전반을 '영성'이라고 정의하는데, 흔히 기독교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영성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는 영성 없이 진실에 도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주체는 자신에게 어떤 변형을 가함으로서 진실에 접근하게 되는데 이러한 자기 변형의 총체가 자기배려가 됩니다.

- 그런데 이렇게 알기위해서 내 존재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피곤하고 그 부담감이 너무 컸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영성을 분리시킨 것이 아니었을까? 근영샘의 추측이신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죠!

- 주체는 어떻게 생성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라캉과 같은 구조주의자들은 사회와 관습과 같은 구조가 주체를 구성하게 된다고 주장한 반면, 푸코는 사회적인 대()타자, 즉 구조주의로 꽉 짜인 올가미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스스로의 주체성을 생산해 내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배려라는 개념에서 탐사해 갑니다. 나에게 주어진 주체의 형성을 깨면서 나아가는 것, 이미 구성되어 있는, 이미 명령 받고 있는 주체를 어떻게 새롭게 구성해 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어떻게 다른 주체를 생산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되지요. 근영샘은 이렇게 주체가 변하는 것은 혁명이고, 이것은 거대 담론적인 혁명과 굉장히 다르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이미 명령체계 위에 존재하는 주체를 뒤집는다는 것은 그 명령체계를 뒤집는 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므로 이 자체가 이미 혁명이라는 것이죠. 푸코가 자기배려의 개념을 중심으로 어떻게 다른 주체-되기로 다음 강의들을 이끌어갈 지 궁금해집니다.

다음 발제는 앤데 샘, 간식은 현민 샘이 준비해 주기로 하셨습니다.

<주체의 해석학> 200p까지 읽어 오시고요, 내일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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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그녕님의 댓글

그녕 작성일

오~이 일목요연한 정리! 역쉬 윤지쌤이셔요~ ^^

潤枝님의 댓글

潤枝 댓글의 댓글 작성일

에구 쑥스럽네요 ^^;
근영샘께서 세미나 중에 맥을 잘 잡아주셔서 그렇습니다.
<주체의 해석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헤매고 있었는데, 근영샘께서 푸코가 어떤 문제의식으로 강의를 이끌어 가려고 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에 어떤 출구로 나가게 될지 중요한 맥락을 잡아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