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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강좌] 5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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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쓰담쓰담 작성일19-09-03 00:02 조회11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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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창 늦은 가족강좌 후기입니다.벌써 지지난 주() 화요일에 있었던 가족강좌는 길진숙 샘의 도련님이었습니다. 도련님은 일본 근대를 대표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입니다. 소세키는 일본의 근대 개혁이었던 메이지 유신(1868)이 공표되기 직전에 태어났습니다. 서구 문명이 동양으로 들어오는 그 시작점을 겪어냈던 거죠. 바로 근대의 핵가족이 탄생하는 때. 이때 소세키는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나쓰메 소세키.


소세키가 말한 근대의 가족에 앞서 소세키의 가족사 역시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세키의 어머니는 나쓰메 집안의 후처였습니다. 소세키는 그의 어머니가 41세에 태어났습니다. 많은 나이에 소세키를 낳았던 그의 어머니는, 소세키를 부끄러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소세키는 태어남과 동시에 다른 집의 양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를 불쌍해했던 그의 누이가 소세키를 다시 집안에 들였으나, 그럼에도 소세키는 다시 시오바라라는 가문의 양자가 됩니다. 하지만 소세키가 8, 9살이 되었을 때, 시오바라의 양부모가 이혼을 하게 되면서 소세키는 다시 나쓰메 가로 들어오게 됩니다. ‘시오바라라는 성을 가진 채로 말이죠. 그랬던 그가 나쓰메라는 성을 받게 된 건 그가 21살이 되고 난 후였습니다. 그때가 돼서야 복적을 시킨 건 소세키의 형제들이 죽자 대가 끊길 것을 염려하여 그랬던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소세키의 가족사는 참 파란만장합니다. 소세키는 친부모가 자신을 탐탁해하지 않고, 양부가 자신에게 주었던 사랑을 돈으로 받아내려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에 대한 환상을 품지 않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일종의 자본주의식 투자 수익구조 같은 거예요. 내가 너한테 이만큼 쏟으니까 너도 그렇게 나한테 보답해. 사랑으로 보답하든,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살아주기.” (길샘 강의 )

어떻게 이렇게 적나라하게 가족을 폭로할 수 있을까요? 사실 그렇습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일심양면에서 도우며 자식들을 길들입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과 같이 당신들이 원하는 길을 따라가길 바라는 거죠. 반면 자식들은 부모의 말을 듣는 대신 그 밑에서 물질적인 풍요와 안정을 누립니다. 철저한 교환 관계의 성립! 가족, 하면 떠오르는 애틋함이나 편안함이 이런 교환 관계에서 움직였다고 생각하면 정말 섬뜩하기 그지없습니다.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은 그런 가족에서 벗어나 자기본위로 사는 도련님을 보여줍니다. ‘자기본위란 소세키가 만든 개념입니다. 그 밑에 깔린 철학적 베이스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도련님의 모습이 자기본위로 살아간다고 본다면 좀더 감이 오는 것 같습니다. 소설 도련님에 등장하는 는 부모와 형을 둔, 전형적인 핵가족의 일원입니다. 하지만 그는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달랐습니다.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을 부모에게 물려받은 그는, 정말 무모하기 짝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 2층에서 뛰어내려 허리를 삔 후 아버지가 어떻게 허리를 삐냐고 하자 다음에는 허리를 삐지 않고 뛰어내리겠다고 큰 소리 칩니다. 선물 받은 칼로 뭐든 벨 수 있다고 자랑했을 때 친구가 손가락을 잘라보라고 주문하자 정말로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비스듬히 베는 등 온갖 기행을 서슴지 않습니다. (길샘 강의안, p.7)

듣기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가족들은 어땠겠습니까? 부모는 그를 꾸중하고, 형과는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급기야는 부모님이 꼴도 보기 싫다고 화를 내자 집을 나가 친척집으로 갑니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골칫덩어리의 .’ 하지만 정작 그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 자신을 예뻐해 주는 하녀 할멈 기요가 있기 때문이지요. 기요는 올곧고 고운 품성을 갖고 있다며 존경하는 의미에서 그를 도련님이라 부릅니다.

기요의 말마따나 도련님은 정말 무식할 정도로 정직합니다.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는 것이죠. 행동한 대로 벌을 받고, 부모가 싫다니 기꺼이 나갑니다. 나중에 교사가 되어서도 그가 가장 싫어하는 건 장난을 쳐 놓고서도 거짓말을 하는 학생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도련님의 이런 정직함이 그를 가족에게서 자유롭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엇도 감당할 수 있는 도련님이 대체 뭐가 아쉬워서 가족에게 손을 벌릴까요? 왜 그들의 애정을 갈구할까요? 어쩌면 우리가 가족에게서 떠나려고 하지 않는 것도 우리가 도련님처럼 정직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독립한다는 건 안락을 포기해서 진짜 자립하는 거예요. ‘자기 본위는 자립의 문제에요. 문명의 모든 혜택은 다 받는데, ‘나 자립해.’ 이게 말이 돼요? 그럴 수 없어요. 그거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나서 해방되는 것. 이 도련님은 진짜 탈주했어요.” (길샘 강의 )

홀로 설 수 있기에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도련님! 철없고 막무가내로만 보이던 도련님이 새로이 멋지게 다가오는 강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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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줄자님의 댓글

줄자 작성일

예전에 읽었을때 그냥 재미있는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던 <도련님>.
자립하겠다고 하면서 편리함은 놓지 못하고 있는 내못습이 떠오르더라구요.
진정한 독립, 자기 본위는 완전한 탈주가 없이는 안된다니,
해보자구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