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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포착하는 영화,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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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작성일22-08-02 13:31 조회136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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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포착하는 영화, <화양연화>

- 왕가위 감독이 보여주는 감각의 세계


이유진 (청공자, 2학년)


오늘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영화 글쓰기를 해볼 예정이다. 강학원에서는 정말 많은 공부를 한다. 동서양 철학은 물론이고, 인류학 신화학 등, 참 다양하게도 공부를 한다. 이렇게 공부한 것을 이론으로만 남기기보다 우리는 배운 것으로 글을 쓰고, 관계도 맺고, 활동을 조율한다. 나는 나름대로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강학원 안에서도 영화를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배운 것으로 글을 쓰고, 관계도 맺는 것처럼 내가 강학원에서 배운 것을 영화로 소화해보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강학원에 온 목적도 그것이었다. 많이 배워서 영화를 잘 찍기! 그래서 영화 글쓰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공부는 공부, 영화는 영화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되는 공부를 하고, 공부가 되는 영화를 하고 싶다. 그러니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다양한 영화와 공부들로 만나보고자 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왕가위 감독, <화양연화>, 양조위, 장만옥


8월 달의 영화는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다. 사실 처음 8월의 주제는 <화양연화>가 아니라 ‘왕가위’ 감독 자체였다. 왕가위로 주제를 잡게 된 것은 저번 달쯤, 왕가위 감독의 <타락천사>를 본 것이 계기였다. 영화를 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연출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캬, 화면을 어떻게 저렇게 잡고 음악을 어떻게 저렇게 잘 쓸까. 이런 생각을 했다.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영화의 전개가 왜 이게 이렇게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 재미가 편치가 않았다. 왕가위 영화가 그럼 그렇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멋있어 보이는 거. 그냥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영화가 며칠 지나서도 묘하게 마음속에 남았다. 왕가위 영화가 늘 그렇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묘하게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이 흔적의 이유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첫 번째 영화 글쓰기의 주제를 왕가위 영화로 하려고 했다. 그런데 ‘왕가위’ 자체로 글을 쓰려니 내 수준에서 감당하기엔 너무 큰 주제였기에…^^; 줄이고 줄여서 <화양연화>이다. 하고 많은 왕가위 영화 중에서 하필 <화양연화>인 특별한 이유는 따로 없다. <중경삼림>도, <해피투게더>도, <타락천사>도, 다 좋지만 일단 가장 최근에 봐서 기억이 생생한 게 <화양연화>이기도 하고, 내가 가장 처음 본 왕가위 영화가 <화양연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화양연화>에 대한 추억을 잠시 더듬어 본다. 내가 <화양연화>를 처음 본 것은 스무살 시절,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던 때였다. 그때 본 화양연화는 ‘이게 뭐지?’였다. 뭔가 멋있는 음악도 나오고, 미술도 멋있고, 배우도 너무 멋있는 거 알겠지만 전개가 이해되지 않아 나를 ‘갑자기 왜 이렇게 돼?’라는 상태에 빠져들게 하는 영화였다. 거기다 마지막을 뜬금없는 앙코르와트로 장식할 건 뭐람.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두 부부가 이웃집으로 이사를 왔다. 첸 부인네와 차우네다. 그런데 그 둘의 배우자가 서로 바람이 난 거다. 첸 부인과 차우는 자신들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눈치 채고, 은밀히 만남을 갖는다. ‘그 불륜이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 그것이 그들을 모은 질문이었다. 배우자의 불륜을 계기로 만난 그 둘은 어느 순간 스며들듯 서로에게 사랑에 빠진다.

내용만 놓고 보면 이해가 간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에서 이 내용의 연결성이 알기 쉽게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보자. 첸 부인과 차우는 자신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심지어 그 대상은 옆집 남자, 혹은 여자의 배우자다. 그래서 그들은 만남을 가지고 서로를 은근히 떠본다. 첸 부인이 말했다. “그 넥타이는 어디서 사셨어요?” 아내가 선물해준 거라고 한다. 심지어 홍콩에는 없는 넥타이다. 그러자 첸 부인이 이어서 말한다. “실은요, 남편한테 같은 넥타이가 있어요.” 이 다음의 전개는 아마도 ‘그들이 왜 그랬을까?’ 하고 허탈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어떻게 시작했을지 생각해보자. 재현해보는 건 어때?’, ‘그래’라고 하는 전개이다. 그러나 왕가위는 이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대뜸 자신들의 배우자가 눈이 맞은 그 순간을 재현하는 첸 부인과 차우의 장면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우리가 익숙한 시간 순서는 A→ B→ C→ D인데 A 다음에 D가 오는 꼴이다. 그런데 앞에 A가 있다고 뒤에 D가 올 것을 우리는 미리 알 수 없다. A, B, C라는 과정을 보고 나서야 우리는 그 다음에 D가 올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왕가위 감독은 관객의 납득 여부와는 상관없이 냅다 과정을 생략해버리는 거다.


“그 넥타이는 어디서 사셨어요?” <화양연화> 中


<타락천사>에서도 그랬다. 어느 순간 킬러는 찰리랑 같이 살고 있고, 하지무는 킬러의 전前 파트너와 동업을 한다. 사실 이렇게 세부적인 과정을 건너뛴 사건 전개는 왕가위 감독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이런 전개 방식이 불편했다. 내가 이해하기 힘드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전개 방식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에 그렇게 깊이 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 같다.

우리는 시간이 연속적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감각하는 시간은 그와 다르다. 연속적이지 않고, 여러 순간들로 흩어져있다. 사실 시간의 연속성은 감각에 있어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원인과 결과에 따른 연속적인 시간 경과는 모두에게 쉽게 납득될 수 있는 시간이다. 모두에게 있어 일관적인 시간이라는 공통적인 주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의 인과만 알맞다면 우리는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다. 때문에 타인을 설득하고 싶을 때, 우리는 합당한 인과관계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러나 감각의 시간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다. 감각은 타인에게 전할 수 없는 나만의 감각이다. 나의 고통, 나의 슬픔, 나의 기쁨. 그 감각은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일관적인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경험한 순간순간마다 나의 시간은 다르게 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첸 부인이 자신의 남편과 함께 있던 순간, 회사에서 일을 하던 순간은 시간이 짧다. 그러나 그녀가 차우와 함께 있던 순간, 회사에 그의 전화가 오는 순간은 첸 부인의 시간에 길게 남아있다. <화양연화>는 그렇게 감각의 시간을 따른다.

며칠 전에 친구들과 함께 <화양연화>를 보았다. 그때 친구들이 영화를 보며 했던 감탄사는 ‘와, 진짜 사진 같다’였다. 그렇다. <화양연화>는 사진 같은 영화다. 단지 모든 장면들을 아름답게 연출해내서 뿐만이 아니다. 왕가위는 사건의 연속성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순간 속에 모든 감각과 감정을 담아두고 싶어 했다. 그렇게 모든 감각을 꾹꾹 눌러 담은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빠르게 흘러가버려서 곧 사라질 시간 속에 나의 소중한 감각을 내맡길 이는 아마 없으리라. 그래서 <화양연화> 속 화면은 빠르게 흘러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 오히려 모든 감각이 느려지는듯, 그 순간순간들을 더 섬세하게 포착하려는 듯이 슬로우 모션을 주로 사용한다. 그렇게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은 결국 사진이 되어 정지해버린다. 실제로 <화양연화>에는 인물들이 프레임에 걸려있는 구도가 자주 보인다. 문지방에, 벽과 벽 사이에, 거울 속에, 그들의 감각은 그 안에 멈춘 채로 더욱 애틋해진다. 이렇게 보면 왕가위는 영화라는 연속적인 운동 속에서 정지의 미학을 발견하려고 했던 것 같다.


<화양연화>의 시간은 감각을 따른다.


그런데 위에서도 말했듯이, 감각의 시간은 자기 자신에게 빠져드는 시간이다. 감각은 오직 나만의 고유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인과의 시간과는 다르게 타자와 공유될 수 없는 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왕가위는 절대로 질문을 던지는 타입이 아니다. ‘이것 봐, 그렇지 않아?’하고 물어보며 관객을 납득시키지 않는다. 그냥 혼자서 자신만의 감각을 소중히 할 뿐이다. 그럼에도 왕가위의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참 미묘하다. 왜일까? 아직 애매하긴 하지만 사람들은 크게 보면 모두 비슷한 것을 느끼고 감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각 개인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공감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너의 슬픔을 같이 슬퍼할 수 있고, 너의 기쁨을 같이 기뻐할 수 있다.

<화양연화>는 혼자 애틋해하는 영화다. 그런데 그 마음이 너무 깊어서 보고 있는 내가 다 애틋해지게 만든다. 의도적으로 관객에게 어떤 마음을 전달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관객은 그 감각에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다. 오직 그 속에 담긴 감정과 감각에 깊이가 있다면 말이다.

이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그 전에 <화양연화>가 보여주는 감각에 대해 한 가지 일화가 있다. 늦은 밤, 친구들과 함께 <화양연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에 가로등 하나가 켜져 있었는데 꼭 <화양연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는 ‘감각적’이게 표현한다는 것이 뭔가 특별히 아름다운 연출을 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면을 예쁘게 구성하고, 너무 튀지는 않지만 어딘가 독특한 소품과 구도, 조명 등이 사용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개성적인 색감을 사용한다던가, 네온 조명처럼 휘황찬란한 조명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각적이라는 것은 그런 ‘특별한’ 것과는 다르다. 감각적인 것은 우리의 일상 속에 있다. 길을 걷는 도중에 <화양연화> 속 조명을 발견하듯이 말이다. 그러니 감각이 풍부한 영화를 찍고자 한다면, 단지 예쁜 연출 기법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의 감각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되는 것이 아닐까?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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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하늘님의 댓글

이하늘 작성일

"왕가위는 사건의 연속성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순간 속에 모든 감각과 감정을 담아두고 싶어 했다."
이 부분 매우 재미난 해석인 것 같아요.
화양연화의 슬로우 모션, 화려한 색채, 뚝뚝 끊어지는 컷신 등이 설명되는 군요! ㅋㅋㅋ

글 잘 봤습니다~
우리는 어떤 감각의 시간을, 감정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보리a님의 댓글

보리a 작성일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문득 시간이란 개념도 학습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시간은 시계 혹은 시간표 안에서만 작동하는 가상으로 과연 그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의심스럽습니다.
시간이라는 추상보다, 오감을 자극하는 감각만이 실재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어요.

화양연화가 아름다운 지난 시절이라는데, 그것 역시 박제된 시간의 저편이기보다 여전히 살아서 기억되고 가슴뛰게 만든다면야!

영화 함 봐야겠다는 ㅋㅋ 좋은 글 감사합니다~

조은샘님의 댓글

조은샘 작성일

유진짱의 영화글 첫 연재! 재밌구리~
저도 <화양연화>의 장면이 확확 넘어가서 대체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추궁하느라 머리를 좀 썼던 거 같아요.
그런데 일상적 감각을 느끼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정말 청춘의 화양연화를~ 잘 담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내게 없는 추억이 생긴 느낌이랄까!
작가가 어느 장면에 오래 멈추어 있는가를 주목해본 유진짱의 시선도 재밌구요.
캬~ 다음 영화 글도 기대되네여~

어인정님의 댓글

어인정 댓글의 댓글 작성일

맞아요. 저도 <화양연화>를 보면서 이 장면이 어떻게 전 장면이랑 이어지는지 추측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ㅋㅋ
그런데 이렇게 관객으로부터 생각하게 하는 것도 영화에서 관객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 속 내용도 우리의 추억으로 쌓였지만, 같이 영화를 본 그 순간도 추억으로 쌓인 것 같습니다ㅎㅎ
같이 영화 봐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