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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반응하는 마음 관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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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작성일22-07-26 12:15 조회6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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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반응하는 마음 관찰하기

청공자 2학년 이용제

 

이것을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일체지로도 쉽지 않습니다.

시작을 알 수 없는 길고 긴 윤회 속에서

얼마나 많이 불에 타 죽었는지를.

그러니 순간순간 일어나는 현상에 마음을 챙기십시오.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그 고통에 반응하는 마음을 정확히 관찰하십시오.

(무념, 응진 역, 법구경 이야기1, 옛길, 389p)

 

부처님이 설하신 게송 21,22,23번에 등장하는 사마와띠가 한 말입니다. 그녀는 꼬삼비라는 왕국의 왕비였는데, 부처님과 연이 닿아 불법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왕비 마간디야의 음모에 휩쓸려 불길 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때 함께 갇힌 시녀 500명이 있었는데, 사마와띠가 그녀들에게 말한 것이 바로 저 인용된 부분입니다. 불에 타서 목숨을 잃게 된 상황에서도 마음을 챙기고, 고통에 반응하는 마음을 관찰하라고요.


이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라면 불길 속에서 출구를 찾기에 급급할 것 같고, 또 불길을 만든 사람에 대한 원망부터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죽음이 닥쳐오는 상황은 상상하기도 어렵죠. 하지만 문득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 아닌, 아주 미약한 고통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작은 상처, 스트레스, 피로감 따위의 고통은 확실히 가까이에 있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확실히 보입니다. 저는 고통을 살펴보려하지 않고, 피하려고만 한다는 것 말이죠! 그것도 매우 일시적이고 임시방편인 방식으로 말이죠.


제가 살고 있는 상방(감이당&남산강학원의 남성 게스트하우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상방에는 저를 포함해서 3명의 청년들이 살고 있는데요. 다들 나가고 들어오는 시간이 비슷한 편이라 집안 내에서의 동선도 비슷하게 겹칠 때가 많습니다. 비슷한 시간에 씻고, 책을 읽고, 잠에 들죠. 그런데 하루는 제가 거실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 문득 시선이 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거실에 떨어져 있는 물방울이었죠. 아마 부엌에서 손을 씻거나, 화장실에서 씻고 나온 후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본 순간, 평소에 경험한 몇 가지 상황을 떠올리고 불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외출준비를 마치고 나가기 직전에 물방울을 밟아 양말이 축축해진 경험, 귀가 후 누웠을 때 상의가 축축해진 경험..등등입니다.


별 것 아니죠? 하지만 저는 별 것 아닌 고통(고통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경험이죠..?)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관찰하는 행위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사마와띠처럼 불길에 휩싸인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잊게 되고, 잊으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저는 여기서 고통이 계속해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방울을 보고 불편함을 느꼈다는 것부터 그렇습니다. 과거의 물방울로 인한 고통(?)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넘어가니, 지금 마주친 물방울 앞에서도 똑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 셈이니까요. 그러니까, 제대로 살피지 않고 넘어간다고 해서 상황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다시 돌아오기까지 하니까요.



그러니까제대로 살피지 않고 넘어간다고 해서 상황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양말이 젖었을 때의 찝찝함이 싫었고, 또 발이 축축해지며 비위생적이게 변하는 것을 신경 쓰고 있었으며, 또 그로인해 시간을 소모하는 것도 싫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속 생각해보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떨어진 물방울을 싫어하는 이상 그것을 떨어트린 사람을 싫어하게 될 테고, 고작 물방을 때문에 사람이 싫어진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러면 또 다시 생각을 멈추게 됩니다. 물방울 하나에 걸린 마음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듯합니다.


남의 이야기로 듣는다면 꽤 재미있을 것 같은데, 직접적인 제 이야기라서 풀어내기가 부끄러워 넘어가게 됩니다. 이래서 반응하는 마음을 정확히 관찰하십시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관찰하지 않으면 넘어가게 되고, 넘어가게 되면 똑같은 고통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니까요. 마치 윤회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점에서 고통은 손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손님이 왔으면 잘 맞이해야 할 텐데, 매번 문전박대를 하니 손님은 발걸음을 돌렸다가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제 고통이라는 손님이 문을 두드릴 때 일단 맞이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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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양은정님의 댓글

양은정 작성일

살면서 작은 고통들이 참 많은것 같아요, 하지만 사소하다고 느껴져서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많죠. 그 사소한 불편함들을 잘 알아차리는게 삶을 느끼는데 중요한 시발점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