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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겪어내며 삶의 아우라를 되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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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작성일22-07-20 22:02 조회110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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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겪어내며 삶의 아우라를 되찾기

청공자 2학년 강민주


도박이란 바로 이처럼 운명이 평상시라면 오랜 시간이 흘러야만, 만들어낼 수 있는 무수한 많은 변화를 한순간에 초래려는 기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완만한 생애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감정들을 한순간에 긁어모으는 기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발터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Ⅰ』, 1128p

안녕하세요 민주입니다. <레고 파리 세미나> 에서는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읽고 있습니다. 19세기 파리, 자본주의의 유년기를 보며 이 시대를 이해해보고 있는데요. 드디어 시즌 1이 끝이 났습니다. ㅎㅎ 지금은 시즌2의 시작을 몇 주 앞두고 여유로운 일요일 저녁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에 올라온 동철샘의 후기를 재밌게 읽어서 저도 이번 글에서 이야기를 덧붙여보려고 합니다.


발터 벤야민은 자본주의가 시작되고 사진기와 같은 복제 기술이 발명되면서 예술이 아우라를 상실했다고 말합니다. 벤야민은 아우라를 공간과 시간을 통해 설명합니다. 예술작품이 탄생할 때 당시의 공간과 시간의 직조 속에서 아우라가 탄생한다는 거죠. 아우라는 재현될 수 없습니다. 다른 시공간에서는 다른 아우라가 탄생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예술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도 달려 있는데요. 아우라라는 것은 그 작품을 오랫동안 응시하면서 느낄 수 있는 겁니다. 즉 그 대상과 보는 사람이 시선을 주고 받으면서 아우라가 생깁니다. 그런데 사진기와 같은 복제 기술은 오리지널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까지는 복제하지 못하죠. 그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 작품이 탄생되는 맥락, 즉 아우라를 탈락시킨채로 작품만은 채취하고 절단하면서 아우라는 상실됩니다. 그리고 복제 기술로 대량생산되는 상품들에게 우리는 오랫동안 시선을 맞추지 않죠. 어차피 사방에 널렸으니까요!


동철샘은 이를 보고 예술의 아우라가 상실된 것에서 나아가 우리의 삶도 아우라를 상실한 면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의 '경험'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인데요. 지금은 사진기, 인터넷, 핸드폰, 노트북 등의 기술 발전으로 인해 어떤 경험을 너무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핸드폰과 노트북만 있으면 우리는 당장이라도 하아와이, 독일은 물론 가우디의 건축물 피카소의 그림을 쉽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사진기, 인터넷, 핸드폰, 노트북 등의 기술 발전으로 인해 어떤 경험을 너무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얻은 것에서 우리 눈길은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그 대상과 시선을 주고 받는 시간이 거의 없으니 경험했다고도 볼 수 없죠. 그런 점에서 동철샘은 이런 점에서 우리가 경험을 통해 대상을 오랫동안 응시하기를 멈춘 것이며 인생의 맥락들, 즉 서사들이 거세당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저는 이 행위가 마냥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삶의 아우라가 사라진다고도 볼 수 있다니 충격적입니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큰 노동을 들이지 않고도 자본만 있다면 무언가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편리함을 줍니다.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편리성의 대가로 우리는 어쩌면 삶의 아우라를 잃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어쩌면 복제 기술이 단순히 물리적 기술을 넘어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하며 우리 생활 의식에도 들어온 것이지 않을까요?


저는 우리가 '쉽고 빠른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쉽고 빠른 것을 좋아하는 만큼 우리는 느린 것 앞에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하죠. 자본주의에서는 최대한의 이윤을 얻기 위해서 '효율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 시간이 적게 걸릴수록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거죠. 이러한 사고는 단순히 이익을 창출하는 일을 넘어서 우리가 사물을 대할 때, 사람을 대할 때, 혹은 어떤 경험을 할 때도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시간을 덜 들이며 사물, 사람, 경험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이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이익이다.'라는 전제에 자연스럽게 동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벤야민은 파리의 자본주의를 바라보며 '매춘''도박'을 이야기합니다. 사랑과 노동은 모두 꾸준하고 정직하게 시간을 들여서 이루어내는 일이죠. 하지만 매춘과 도박은 그 시간과 과정을 거세하고 쾌락이라는 결과만을 취하겠다는 행위입니다. 자본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런데 현상은 다르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가 쉽고 빠르게 목적을 달성하고 싶어 하는 것도 그 욕망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을 압축하고 싶다는 욕망은 결국 과정은 겪지 않고(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에) 결과만 취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망과 동의어가 아닐까요? 우리의 삶의 아우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지난한 과정을 겪어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마치 벤야민이 파리를 거북이의 속도로 산책했던 것처럼 말이에요.


20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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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제이지님의 댓글

제이지 작성일

뭔가 있는데 말할 수 없는 그 무언가, 시공간의 직조인, 아우라
그리고 효율성에 근거해 사라지는 미학, 거북이의 속도
자본주의는 이러한 면모를 숨기고 있던 것이군요

모하님의 댓글

모하 댓글의 댓글 작성일

대가 없이 이런 편리성들을 누리고 있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효율성과 기술의 발달을 얻은 대신 우리가 어떤 것들을 대가로 지불하고 있는가 살펴보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보리a님의 댓글

보리a 작성일

앗, 반가운 주제의 글이네요. ^^
저도 관심있는 테마라, 좀 뒤적이다보니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읽어보면 여러 대화거리가 나올거 같아여. (아직 안 읽었따는..)

자본주의의 효율적 메커니즘은 노골적 혹은 암암리에 일상을 구성하는거 같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않듯, 우리도 그걸 그저 공기처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듯요.
본문에 언급한대로, 이런 메커니즘이 내가 사람/사물/경험 등 세계를 지각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하는 것도 문득 흥미로울거 같다는 느낌이 팍팍 듭니다. ㅋㅋ

글 공유 감사합니다~

모하님의 댓글

모하 댓글의 댓글 작성일

오 동철샘 방학동안 저 책을 읽어보고싶네요!
동철샘의 후기가 찐으로 재밌어서 저의 말을 좀 보태보았습니다. ㅎㅎ
벤야민과 아케이드의 매력에 점점 빠진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