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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리스뎐(아직 2011ver.+ beta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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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리스 작성일13-08-01 14:12 조회6,46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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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리스뎐 - 2011 cap 翁 시절 편

 

 

 

 

목멱산(木覓山) 북동(北東)편 붓[筆]자루 모양의 동네에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사는데 성은 문리요 이름은 ‘스(?)’라. 천성(天性)이 총명치 못하고 허리 부실하여 큰 일을 맡길만 하지 못했는데, 성격 또한 수줍음이 많고 움직임을 싫어하여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지인(知人)들과는 종종 희언(戱言)을 즐기는데, 성정부박(性情浮薄)하고 국량협애(局量狹隘)하여, 간혹 칭찬을 들으면 오활[迂闊]자긍(自矜)하였고, 자주 원망을 들으면 금세 위축침체(萎縮沈滯)하였다.

 

 ‘스’는 어려서 경상좌도에서 걸음마를 배웠으며, 이후 상경하여 한성 북쪽 동소문 산마을 재개발 지역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공산(空産) 사상을 깨우쳤다. 스물이 넘어서야 간신히 문장에 맛을 들여 이십대가 끝날 무렵까지는 시(詩)를 읽고 ‘작은 이야기[小說]’를 지으며 자적(自適)하였는데, 평소 생각이 얕고 독서가 짧아 문장으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스물 아홉에 우연히 지인(至人)을 만나 개과천선(改過遷善)하는데, 시간이 지나매 더불어 함께 공부와 밥과 우정을 나누어 먹는 무리들이 늘어갔다. 이 지인은 스스로를 곰마음[熊心]이라 불렀는데, 스는 첫눈에 곰마음을 존경하였다. 가끔씩 스는 이 시절의 인연을 돌이켜 수유지간(須臾之間)이라 회상하는데, 어찌됐건 십이년여의 공동생활동안 그는 '비인칭주어로 (잘)살'았다. (이 시기에 관한 기록은 <2009 기축호란(己丑胡亂)>편에 자세히 전한다).

   

2011년, 스는 목멱산 북쪽 필동에서 ‘모자 쓴 노인(cap 翁)’을 만나게 되니, 이로써 새로운 인연의 물꼬는 비로소 남에서 북으로 바뀌고 뒤집혀 틔워졌다.

   

원래 스는 단순하여 동시에 여러 일을 벌이지 못했는데, 이는 그가 금문(今文)을 위주로 학문을 시작했으면서도 사실상 고문(古文)만 열중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예전에 스를 알던 사람 사람들은 그가 제비바위(燕巖)나 찻뫼(茶山), 치양지(致良知) 따위를 들먹이는 걸 희한하게 여겼고, 새로이 그를 알게 된 사람들은 가끔씩 그가 봄동산(春園) 같은 곳에 놀러다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나, 스에게 이 둘은 멀지 않고 다르지 않다.

   

스는 2013년 현재 서른 열 넷이 되었다. 캡옹 쿵푸 도장에서 스는 주로 3층 수련장을 이용하는데,  동창(東窓)에 나란히 혹은 북창(北窓)에 거슬러 앉기를 좋아한다. 스는 요즘 한때 기원전 시대 말[語]들의 풍경에 관심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주로 애수애내수(愛愁哀耐手)[SNS, 사랑하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참아내는 수단]할 뿐이며,  아직까지는 문장으로 세상과 더불어 말의 길을 찾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재능에 비추어 보자면 꼭 밝다고 할 수 없다. 

   

계사년(2013) 여름, 또 한번 자기소개가 강제되는 한 시절을 만나, 문득 그의 전기(傳記)를 써주는 사람이 없기에 붓을 들어 자신의 일을 적고 이전의 문리스뎐(2005ver. 2011ver.)과 구별하여 2013 캡옹 문리스뎐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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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홈피지기님의 댓글

홈피지기 작성일

다시 봐도 정말 잘쓰셨네요.ㅋㅋㅋ 추사/ 엽사 없이도 웃길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돠~~ㅎㅎ

유니스님의 댓글

유니스 작성일

허허, 무릎을 치면서 읽었소이다. 함부로 가까이 할 분이 아니시구려. 애수애내수...